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복숭아와 사귀다/고영민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사 온 다음 날부터 하나둘

복숭아가 썩기 시작한다

작정한 것처럼


과즙을 뚝뚝 흘리며

두 개 세 개 무른 복숭아를 먹어 치운다

복숭아도 질세라 부랴부랴

썩는다

누가 먼저 먹어 치우고

누가 먼저 썩어 버리는지

내기라도 한 것 같다


자고 일어나니

또 몇 개 복숭아는 썩어 있다


썩은 곳을 도려내고

끈적한 손으로 성한 나머지를

먹는다

한 상자 복숭아를 고스란히

다 먹겠다는 것은 욕심


누구든 집에 복숭아를 들이면

반은 먹고 반은 버린다는

생각


[오후 한 詩]복숭아와 사귀다/고영민
AD
원본보기 아이콘

■무슨 일인들 그렇지 않을까. "반은 버린다는" 생각, 반은 포기한다는 생각, 반은 떠나보낸다는 생각. 아무리 욕심을 낸다 한들 복숭아는 복숭아대로 절반은 상하고, 돈은 돈대로 쑥쑥 빠져나가고, 어떤 일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쌓여만 있고, 정작 보고 싶은 사람은 영영 만나질 못하고. 그래도 그래서 복숭아는 절반은 먹었고, 돈은 쥐꼬리만큼씩이나마 모이고 있고, 돌아보면 부끄럽지 않게 매일매일 부지런하게 살았고, 문득 외로울 때도 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새삼 바라보게 되고. 다행이지 않은가, 절반은 건졌으니,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기서 함빡 웃고 있으니.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