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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걸캅스' 덮어놓고 비난하기 전에 영화 보시길(feat.라미란)

최종수정 2019.05.03 15:18 기사입력 2019.05.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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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슬 연예기자]

[초점]'걸캅스' 덮어놓고 비난하기 전에 영화 보시길(feat.라미란)


언제부터인가 형사 두 명이 나오는 콤비 수사물을 보면 마치 영화를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이는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고, 여기에 염증을 느낀 관객은 등을 돌렸다.


무엇보다 영화보다 현실 속 사건이 더 영화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2019년. 한동안 극장 관객을 휩쓸던 수사물이 크게 힘을 내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걸캅스'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인 형사 두 명 모두가 여성이라는 점부터 흥미롭다. 민원실 퇴출 0순위 전직 전설의 형사 미영(라미란 분)과 민원실로 밀려난 현직 사고뭉치 형사 지혜(이성경 분). 집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이들은 민원실에 신고접수를 하기 위해 왔다가 차도에 뛰어든 한 여성을 목격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1990년대 여자 형사 기동대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전설의 형사인 미영은 답답한 현실과 마주하고 형사 본능이 깨어난다. 미영이 본능이라면 지혜는 열정이다. 패기 넘치는 성격으로 가끔 욱하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 앞에서 지혜는 가슴을 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팔을 걷어붙이고 답답한 현실에 하이킥을 날린다.


현실에 발붙인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안 어울릴 것만 같은 콤비는 의외의 케미스트리로 극과 밀착된다. 이 과정에서 라미란의 개인기는 '걸캅스'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실제 라미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코미디 장르적 요소를 기대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마냥 웃기자는 마음으로는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바. 배우의 심오한 고민이 읽히는 지점이다.


라미란의 이 같은 고민은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머와 액션, 사건이 주는 무게감의 균형을 잘 맞췄다. 잘 만든 B급 액션 영화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걸캅스'는 장르적 재미뿐 아니라 현실보다 더 생생한 까닭에 의미를 더듬게 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뜨겁게 달구며, 국민적 공분을 산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사실감 넘치게 담았다. 가해자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불법 촬영을 저지르고, 온라인상에 공유하는 장면과 이를 알고도 그저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는 경찰은 2019년 현실과 밀착돼 있다.


영화 속 가해자들이 클럽에서 피해자를 물색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과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매직 퍼퓸, 일명 물뽕(GHB) 등이 더욱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모두 꼼꼼한 취재가 선행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미영과 지혜가 강력반, 사이버 범죄 수사대, 여성청소년계까지 경찰 내 모든 부서를 찾아가지만 복잡한 절차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면당하는 모습도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경찰이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동안 피해자의 고통이 외면당하는 장면은 단지 영화적으로 창조된 상황이 아니라서 관객을 더 몰입하게 만든다.


사건 해결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무능한 공권력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슴을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밖에 없었던 우리는, 제 일처럼 공감하며 두 팔을 걷어붙이는 미영과 지혜를 응원하게 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돕는 민원실 주무관 장미(최수영 분)와 민원실 팀장(염혜란 분) 등이 똘똘 뭉쳐 어느새 한팀이 된 모습은 '어벤져스' 못지않은 통쾌함과 희열을 안긴다.


[초점]'걸캅스' 덮어놓고 비난하기 전에 영화 보시길(feat.라미란)


'걸캅스'는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 영화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남성 중심 설정과 남성 시각이 빚은 편견 투성이 캐릭터들이 실종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자기들도 좋아서 찍은 거잖아"라고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씌우는 세상을 향해 미영은 말한다. "미안해하지마. 본인 탓이 아니야. 고개 숙이지 마"라고.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는 남성들의 공격적인 반응을 신경 쓴 탓으로 분석된다. 물론 상업영화 시장에서 어디까지나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터다. 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에 쉽게 귀 기울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대세에 편승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걸캅스'의 탄생은 주목할만하다.


물론 '걸캅스'는 다양한 프레임을 벗어나 영화적으로 봤을 때도 충분한 재미를 준다. 잘 만든 코믹액션 영화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콤비물의 재미도 충분해 속편도 기대케 한다.


"편견을 가지기 전에 먼저 영화를 봐주세요."


라미란의 이 같은 당부처럼 영화를 보기 전과 후의 인상은 사뭇 다르다. 영화가 가진 재미와 힘이 충분하고, 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덮어놓고 욕하기 전에 '걸캅스'를 봐야 할 이유다.


'걸캅스'는 러닝타임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5월 9일 개봉.


이이슬 연예기자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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