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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빼앗긴 하늘에도 봄은 오는가

최종수정 2019.03.19 11:40 기사입력 2019.03.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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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빼앗긴 하늘에도 봄은 오는가

온갖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는 봄이 완연하게 펼쳐지는 춘분의 절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봄이 오면 언덕배기의 거뭇거뭇한 땅에서 막 솟아나는 노랗고 새파란 풀잎들의 수줍은 얼굴들과 만나고, 시냇가의 버들개지의 아기 손을 매만지면서 그 풋풋한 생명력을 느끼곤 했다. 그 분위기에 취해 소년은 파아란 하늘을 나는 종달새처럼 알 수 없는 생명의 환희와 꿈에 부풀어 봄의 들판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런 시니어 세대의 보편적인 아련한 봄날의 생기와 풍경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 이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쯤이면 또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기미년 삼일절의 숭고한 함성을 기리면서 1926년 '개벽'지에 발표된 이상화(李相和)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올린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 이 시는 항일의식과 조국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조국의 빼앗김을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경험했던 이전 세대의 쓰라린 치욕의 역사가 앞으로 결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러나 올 삼월은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초록빛 생기로 가득차야 할 교정이 잿빛 교정으로 바뀌어버렸다. 캠퍼스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봄을 빼앗겨버리고 하늘을 빼앗겨버렸다. 이런 세상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해온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무한대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고삐 풀린 서구식 산업화의 질주를 환호하면서 무한 성장이데올로기의 장밋빛 깃발을 앞세운 기술제국주의의 신민이 된 것이다. 수많은 선각자와 지성인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감각적 욕망과 인간 중심적 쾌락의 유혹에 편승하였다. 그 대가로 인해 잿빛 하늘, 숨 막히는 공기, 오염된 물로 뒤덮인 저주받은 땅에서 헤매고 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설파했다. 공기의 희박화와 농후화로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공기로부터 만물이 생기고 다시금 이것으로 해체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 공기이며, 우리를 통괄하고 있듯이 숨, 즉 공기가 세계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영혼 내지 숨으로서의 공기가 존재자의 근원이며 이것이 생성과 소멸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생명체의 생존에서 공기로서의 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청정한 하늘을 빼앗긴 환경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미세먼지 지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나 자신부터 삶의 방식을 '작은 실천'을 통해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당장 '1인당 플라스틱 소비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적 삶의 혁명'이 필요하다. 지나친 자원낭비와 소비추구의 안락함에서 벗어나 환경 친화적인 검소한 삶이 수반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윤리학자인 한스 요나스의 "너의 행위의 영향이 지구상에 진정한 인간 삶의 지속과 조화되도록 행위하라"는 생태적 정언명령을 경청할 시간이 온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개개인의 책임을 떠맡을 수 있을 때만이 미래세대 앞에서 '푸른 하늘 은하수'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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