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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고시원②·르포]국일고시원 참사 그후…'주거인권' 사각지대 여전

최종수정 2019.03.13 16:31 기사입력 2019.03.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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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판잣집이나 옥수동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도심 속 빈곤 공간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원인인 가난과 주거난을 해결한게 아니라 도시 공간에서 보이지 않도록 밀어낸 탓이다. 이른바 '빈곤의 비가시성' 효과다. 이들이 밀려나 자리잡은 고시원은 주거 인권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화재 등의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만 시설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전국 고시원을 대상으로 시설점검 및 리모델링에 나섰지만 이미 한계는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고시원의 부실한 관리 실태와 개선 방향을 미리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11월 화재 사고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의 현 모습. 내·외부 정비를 마치고 임차인을 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화재 사고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의 현 모습. 내·외부 정비를 마치고 임차인을 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지난해 화재 사고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을 최근 다시 찾았다. 사고가 발생한지 약 네달만이다. 멍자국 같던 외벽 그을음은 지워져있었고 잿더미로 뒤덮였던 건물 내 복도 벽면도 페인트로 말끔히 덧칠돼 있었다. 건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 단장을 하고 임차인을 맞고 있었다.


참혹한 희생이 계기가 돼서일까. 약 세시간 동안 종로구 일대 10여곳의 고시원을 방문해보니 거의 대부분 화재예방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사용연한이 넘은 낡은 소화기는 새 것으로 교체됐고 스프링클러도 '스펙'이 돼 없는 곳이 없었다. 종로3가 A고시원장은 "지난해 사고 이후 벌써 다섯번이나 소방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재 예방 시스템이 한층 촘촘해진 것과 대조적으로 이보다 더 근본적인 주거 인권의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거나 더 악화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권리금 인상, 인건비 상승, 각종 안전설비 설치 비용은 세입자에 전가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요건은 더욱 위협받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방 내부 모습.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방 내부 모습.



종로3가역 인근에 위치한 B고시원. 이곳에서 만난 어학원 수강생 박모(27)씨는 "처음에 왔을 땐 무슨 관짝에 눕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의 방 크기는 약 3.3㎡로 침대와 책상, 냉장고가 전부였다. 외창 달린 방에 비해 5만원 더 싼 창문없는 방이었다. 월세는 27만원으로 이 일대에선 저렴한 편에 속했다. 그는 "취업을 일찍 하지 못한 죄책감에 일부러 가장 싼 고시원에 들어왔다"며 "이곳에 오래 머물면 왠지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아 보통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말했다.

사실 따져보면 박씨의 방이 절대 싼 게 아니다. 오히려 강남 초역세권의 유명 오피스텔보다 몇배 비싸다. 현재 청담역 인근에 위치한 A오피스텔은 전용면적 25.84㎡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원이다. 만약 1000만원을 빌려(금리 4%로 가정) 월세와 대출이자를 포함해 한달에 약 103만원씩 방값으로 낸다고 가정하면 3.3㎡당 가격은 약 13만1500원이다. 박씨가 내는 돈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급 오피스텔은 화장실과 세면대, 냉ㆍ난방기기, 각종 화재ㆍ도난 방지서비스, 주차장, 생활편의시설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복도.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복도.



이 같은 역설이 생겨나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련 정책에만 관심을 쏟는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이로 인해 나타난 법과 제도의 허점, 이를 악용하는 건물주와 고시원업자의 편법, 고시원이라는 건물의 특수성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결과로 파악됐다.


정부는 2011년 주택법 개정을 통해 1인가구의 최소주거조건을 14㎡ 이상 면적에 전용부엌과 화장실을 갖추도록 했으나 고시원은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돼 이를 적용받지 않는다. 기준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하는 건축물 승인도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원룸의 방 쪼개기는 법적 처벌을 받지만 고시원은 이 마저도 비껴간다. 고시원 구조가 주로 방이 수십개로 잘개 쪼개진 '벌집형'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낙원상가 인근에 위치한 C고시원의 경우 성인 남성 두명이 지나가면 게걸음을 해야 할 정도로 복도 폭이 좁았다. 2009년 3월부터 고시원 복도의 가로 폭이 120cm로 의무화 됐지만 이 고시원은 100cm도 채 되지 않았다. 해당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아닌 것이다. C고시원에 7년째 거주해왔다는 신모(61)씨는 "권리금, 리모델링비, 인건비, 식비 등이 올랐다는 이유로 5년전 월세 21만원 하던 방이 지금은 26만원까지 올랐다"면서 "월세가 부담스러워 더 작은 방으로 옮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건물주와 고시원업자의 각종 편법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세입자의 주거 인권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고시원 등 비주택은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없어 거주자의 부담 능력과 상관없이 임대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최저소득계층의 부담 능력에 비해 임대료가 높다"며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체납이 발생할 경우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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