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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습격] “마스크 살 돈 없어요” 숨 못 쉬는 재난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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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수도권을 덮친 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폐지를 줍는 80대 노인 A 씨가 오전 종일 번 돈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기준으로 2,500원을 벌었다. 기능성 마스크는 살 수 없는 돈이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수도권을 덮친 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폐지를 줍는 80대 노인 A 씨가 오전 종일 번 돈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기준으로 2,500원을 벌었다. 기능성 마스크는 살 수 없는 돈이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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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가연·이지은 인턴기자] “10시간 일해서 4,000원 정도 벌어요. 마스크는 일회용 있는데…….”


사상 최악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는 5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서 만난 80대 노인 A 씨는 폐지 벌이와 건강이 어떻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는 몇백 원짜리 일회용 마스크였다. 폐 깊숙이 침투하는 미세먼지는 고령의 노인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하지만 소위 ‘기능성 마스크’는 그에게 사치였다.


미세먼지가 이른바 ‘재난 약자’를 덮치고 있다. 재난약자는 사회경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거나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계층을 지칭한다. 재난이 가난을 타고 가장 취약한 계층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오늘(5일) 오전 1시를 기해 서울은 초미세먼지(PM 2.5) 경보가 발령됐다. 수도권은 사상 처음으로 닷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A 씨는 일회용 마스크에 몸을 의지한 체 연신 폐지를 줍고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이 마스크 언제 샀는지 기억도 없습니다”라며 “요즘 들어 목이 좀 많이 답답하기는 합니다”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인증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A 씨가 착용한 마스크는 식약처에서 인증했는지 알 수 없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인근서 80대 노인 A 씨가 폐지를 끌고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인근서 80대 노인 A 씨가 폐지를 끌고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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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폐지를 줍는 이유에 대해 “오래전에 중풍을 맞았어요. 몸이 불편하니까 일을 할 수 없고, 할 수 없이 이렇게 폐지를 주워 생활하고 있습니다”라며 “하루에 4,000원 조금 많이 벌어요”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 기준 그는 2,500원을 벌고 있었다. 그는 이 돈이 오전 종일 허리를 숙이고 발품을 팔아 번 돈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그의 옷차림에서 휴대전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재난문자를 통해 미세먼지 농도가 얼마나 나쁜지 등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재난문자가 공해 수준으로 너무 많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A 씨는 정작 자신이 얼마나 어떻게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재난문자 사각지대’ 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며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12개 시·도에 닷새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뿌연 하늘 아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며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12개 시·도에 닷새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뿌연 하늘 아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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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최악의 미세먼지가 덮친 요즘 야외에서 일하며 먼지를 들이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40대 여성 전기 계량기 검침원 B 씨는 “온종일 돌아다니면 목이 아프다”면서도 “야외에서 일하다 보니 불편해서 마스크를 착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중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상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잘 안 쓴다”며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답답하고, 안경을 썼을 때나 얘기할 때 불편하다”며 토로했다.


또 “집에서 마스크는 저만 안 쓴다. 딸은 꼭 마스크를 쓰라고 얘기를 한다”면서 “딸한테 일회용 마스크를 사주는데, 한번 쓰고 버리는 건데 비싸고 아깝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또 연신 계단을 오르내리며 택배업에 종사하는 40대 C 씨 역시 마스크는 착용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고객들의 택배 위치 확인 전화와 다음 택배 장소를 확인하느라 아예 마스크를 벗고 일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길에서 만난 한 판매직 사원 D 씨는 “회사에서 마스크를 지급한다”면서도 “고객들을 응대할 때 나 자신도 불편하고 고객들에게도 목소리 전달이 어려워 결국 마스크를 벗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목이 너무 아파 기침을 하게 된다”라며 “그럴 때마다 검은 미세먼지가 섞인 가래가 나오곤 한다”고 토로했다.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세계 기상 정보를 시각화해 나타내는 비주얼 맵인 어스널스쿨에 나타난 한반도 주변 기상상황(지난 4일 오후 9시 현재).사진=연합뉴스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세계 기상 정보를 시각화해 나타내는 비주얼 맵인 어스널스쿨에 나타난 한반도 주변 기상상황(지난 4일 오후 9시 현재).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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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노동을 이어가거나 상대적으로 재난에 쉽게 노출되는 사람을 ‘재난 약자’ 또는 ‘안전약자’로 분류한다.


이들은 ‘재난발생시 재난약자에 대한 지역사회 지원체계 강화방안 연구 논문’에 따르면 △스스로에게 위험이 닥쳐 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없거나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 △스스로에게 위험이 닥쳐 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려도 구조자에게 전할 수 없거나 전하기가 어려운 사람 △위험을 알리는 정보를 받아도 그것에 대해 행동할 수 없거나 행동하기가 어려운 사람에 해당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최대한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게 상책이지만, 마스크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 셈이다. 결국, 이들은 미세먼지가 없어져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국가적 재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5일 서울 도심이 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 낮 최고 기온이 14도로 포근한 봄이 성큼 왔지만, 봄기운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5일 서울 도심이 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 낮 최고 기온이 14도로 포근한 봄이 성큼 왔지만, 봄기운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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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호흡곤란, 두통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청소년 1,800여 명을 8년간 추적한 결과 미세먼지가 심한 곳에 있는 아이들은 폐 성장이 좋지 않아 성인이 되었을 때 폐 기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대기 오염에 노출된 임산부가 낳은 아이의 비만 위험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2.3배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한편 수도권 비상저감조치가 사상 처음 닷새 연속 발령되면서 미세먼지가 조만간 ‘재난’으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재난’의 범주에 미세먼지가 포함되도록 해 국민의 건강권, 생명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세먼지가 법적 재난으로 규정되면 정부의 비상저감조치 이행 합동점검 강화, 비상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 등을 시행할 수 있다. 다만 미세먼지 피해자에게 구호 차원의 지원을 하는 것은, 그 피해의 기준을 설정하는 기준과 내용 등 세부적 규칙 마련 등이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가연 인턴기자 katekim221@asiae.co.kr
이지은 인턴기자 kurohitomi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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