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아름다운 파업/오석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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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떨어진
은행잎이
누워 있던 빗자루를
덮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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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무도
빗자루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시는 어렵지만, 어떤 시는 쉽다. 이 시는 참 쉽다. 그런데 이때 '어렵다' 혹은 '쉽다'는 대체 무슨 뜻일까? 문장의 의미가 선명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이미지가 확연하다는 맥락일 수도 있고, 전개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에 반할 경우들을 두고 '어렵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시가 쉽거나 어려운 것이 곧 그 시의 좋고 나쁨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예컨대 그 뜻이 금방 잡힌다고 해서 시시한 시인 것은 결코 아니며, 이전까지의 문맥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장이 불쑥 들어선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이 시는 쉽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척 깊다. 다만 늦가을의 어떤 풍경을 괜히 새삼스럽게 적은 시라고 하기엔 이 세상의 모든 몽당빗자루들을 향한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결이 스며 있기에 그렇다. 단지 재기로는 쓸 수 없는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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