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싫다던 盧의 친구…운명처럼 '아이언文' 되다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실향민의 아들서 인권변호사, 盧의 친구에서 대통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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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야권발 정계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혼란스러운 정치적 격변을 돌파하고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의 상대' 였던 문 대통령은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고, 참여정부 말기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던 문 대통령이 정치 일선으로 나서게 된 것도 운명의 상대인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였다. 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을 출간하며 2012년 대권에 도전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이후 문 대통령의 정치행보는 '고행'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3년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 국면에서 정치행보를 재개했지만, 내내 '패권주의'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내던 시절에는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탈당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는 한편,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인재영입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그 결과 123석을 차지하면서 일약 원내 1당으로 떠올랐다.
이후 문 대통령은 촛불정국을 통해 '대세주자'로 떠올랐으며,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치열한 당내 경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도 문 후보는 내내 40% 안팎의 안정적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같은 정치역정 끝에 당선된 문 대통령은 앞으로 미증유의 국정공백을 다시 채우는 한편, 적폐청산ㆍ국민통합이라는 쉽지 않은 시대적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중책을 떠안게 됐다.
◆실향민의 아들, 인권변호사로=문 대통령은 고(故) 문용형 옹과 강한옥(90ㆍ여) 여사의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문 옹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중 월남, 경상남도 거제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실향민의 가족인 만큼 문 대통령은 어린시절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영도로 이사한 문 대통령은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애환을 겪었다. 모친의 연탄배달 일을 돕다가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한다.
문 대통령은 가난을 죄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부유한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상실감을 독서로 채워 나갔다. 고교 시절 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모범생만은 아니었다. 술과 담배에도 손을 대기도 했고 싸움에 휘말려 의리를 지키다가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네 차례 정학을 받으면서도 공부를 곧 잘하는 '문제학생'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후 경남중ㆍ고등학교를 거쳐 재수 끝에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 입학했다. 경남 거제 출신이라는 점과 명문인 경남중ㆍ고를 졸업한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혹독한 유신체제가 기승을 부린 1975년 유신 반대집회를 주도하다 대학에서 제적됐고, 출소와 동시에 육군 특수작전사령부로 강제징집 돼 군 복무를 마쳤다.
문 대통령은 전역 이후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곧 이어 전두환 신(新) 군부의 5ㆍ17 비상계엄 전국확대 과정에서 또 다시 체포됐다.
구치소 내에 있던 문 대통령은 당시 경희대 총장의 신원보증으로 가까스로 사법시험에 합격하는데 성공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대법관, 송두환 헌법재판관, 고승덕 변호사 등 쟁쟁한 동기들과 경쟁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시위전력 탓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된 문 대통령은 대형 로펌의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에 내려가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운명과의 만남에서 靑 비서실장까지=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82년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운명의 상대인 노 전 대통령의 첫 인상에 대해 이렇게 회고 했다.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깨끗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했다.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따뜻한 마음이 와 닿았다.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평생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문재인의 운명, 23~28페이지)
이후 문 대통령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하며 부산지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문 후보는 부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창립,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활동 등으로 민주화 운동에 계속 매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권 입문은 한사코 고사했다. 1988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로부터 노 전 대통령, 고 김광일 변호사 등과 함께 영입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활동을 벌이는 와중에도 단호하게 정계 입문을 고사했다.
재야인사던 문 대통령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선 이후였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설득 끝에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공직에 발을 내딛었다. 민정수석을 물러난 이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 2003년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변호인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2005년 부터는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활동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 일체를 주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약력=▲1953년 경남 거제 ▲경남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ㆍ경남지부 대표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 비서실장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제19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제19대 국회의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include $docRoot.'/uhtml/article_relate.php';?>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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