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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시장경제와 그 적(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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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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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에 발생한 한진해운발(發) 물류 대란엔 분명 정부의 책임이 있다. 국내 1위 해운사를 법정관리 보내면서 이후 닥쳐올 혼란을 예측하지 못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플랜 B도 없었고, 전략적인 접근도 없었다. 큰 시야로 사안을 보고 정책을 조정(코디네이팅)하는 역할도 부재했다.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무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지원을 은행에 '지시'하지 않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조율'하지도 않아, 결국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정부와 채권단의 결정 자체를 비난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진해운 대주주의 책임을 강조한 것을 두고 "보고를 잘못 받고 있다"고 대통령의 상황 인식을 비판하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대통령은 적어도 한진해운 사태에 관한 한, 제대로 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진해운 대주주가 물류대란 해결의 1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이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반시장적' 논리로 매도됐다. "법정관리 보내놓고 왜 지금 와서 대주주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느냐"는 대주주측 항변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성공한 경영에 대한 과실을 대주주와 경영진이 가진다면,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도 대주주와 경영진이 지는 게 공정하다. 만약 해운업이 호황기에 접어들어 한진해운이 운 좋게 대박을 터트린다면 그때 채권단은 한진해운에게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 외에 다른 무언가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인가.

한진해운은 감자도 하지 않았고, 현재도 엄연히 대한항공이 대주주다. 법정관리 갔으니까 대주주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욱 큰 무책임이다. 시장경제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그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 같은 논리를 대표하고 있는데, 참 딱할 지경이다. "한진해운 대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는 단지 국민 정서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장경제의 원칙으로도 그렇고, 법적으로도 그렇다.

대주주의 지원에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2013년 대한항공 이사회가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에 빌려줬던 2500억원에 대한 담보를 회사 측에 불리하게 변경하는 데 동의한 결정에도 똑같은 배임의 이슈가 있다. 그 때는 배임을 무릅썼고, 지금은 배임의 그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겠다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건가?"아니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건가?" 현재 대한항공 이사회 멤버 10명 가운데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7명이 당시에도 이사회 멤버였다.
"국내 회사법은 유한책임 주식회사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주주 출연을 강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는 논리도 있다.

회사법에 대한 오독이다. 회사법, 주식회사법에서 주주의 유한책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은 소액주주(외부주주)를 보호하기 위함이지, 경영권을 행사한 지배주주나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만약 그런 잣대라면 지분 33%를 가진 대주주가 무한대의 경영권을 행사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책임은 지분에 따라 지고, 권리는 지분에 상관없이 행사하는 것"이 회사법에 규정된 주식회사 유한책임의 취지는 아니다.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는 갈팡질팡했고, 리더십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주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일"까지 정부에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 적어도 시장경제라면 말이다. 법인이건 개인이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와 건강한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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