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를 주재하는 청문위원들에게 당부하자. 미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왔으면 한다. 이번 청문회는 특정 개인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청문회가 아니다. 말 그대로 수십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의 과정을 살펴보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 됐는지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증인들에겐 검찰 수사보다 더 무서운 게 청문회일 수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 곧 청문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상상력도 발휘해달라. 지금 한국의 조선ㆍ해운업이 어려운 것은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구조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유가 하락과 세계경제 침체라는 경기 순환적 측면도 중요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해당 기업의 경영이 어떠했는지, 금융기관의 대출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저 '정부 개입은 안된다', '국책은행은 관리감독을 잘못했다', '기업은 모럴해저드에 빠졌다'는 식의 단선적인 접근을 해서는 실체적 진실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한다.
후견지명(後見之明)은 가급적 발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그럴 줄 알았다","그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는 식의 질문엔 강한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이 숨어 있다. 사후확증편향을 보이기에 앞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라. 당시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던 금융당국자, 국책은행장, 구조조정 실무자의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를 한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후확증편향을 없앨 수 있다. 그래야 증언석에서 질타를 당하더라도 설득력이 생기고, 청문회를 듣는 국민들 입장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래서 더 넓은 의미에서 의사결정 시스템에 문제는 없었는지, 금융당국과 국책은행간의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주었으면 한다.
'서별관회의' 자체를 문제 삼는 '소아병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달라. 서별관회의는 김대중정부 때도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관계부처간 이해관계를 협의하고 조율하는 기능은 모든 정부에 필요하다. 만약 서별관회의가 문제라면, 동별관회의라도 만들어서 그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유지돼야 할 기구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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