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미꾸라지를 키울 땐 무리에 천적인 메기를 풀어야 바짝 긴장해 더 쌩쌩해진다."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경영 선언 때 언급한 '메기론'이다. 메기라는 새로운 위협과 자극이 가해지면 미꾸라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몸부림쳐 더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메기론을 기업경영에 응용한 대표 사례다.
국내 신용평가 시장을 보면 활력을 잃어버린 미꾸라지들이 모여 있는 고인 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평가정보 3사가 각각 31.6%, 32.7% 35.4%씩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3사 과점 체제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과점의 달콤함에 빠져 '등급장사', '뒷북강등'을 남발하며 제 때 객관적인 신용평가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배임이다.
최근 한진해운 사태 등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본 데에는 무능한 경영진, 무책임한 채권단, 업황 침체 외에 신평사 3사의 책임이 일부 있는 이유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자체신용도(독자신용등급)', '제3자 의뢰평가', '신평사 선정 신청제' 허용 등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등급장사를 하는 신평사는 예외없이 퇴출 조치하겠다는 초강수도 뒀다. 신용평가 시장 선진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당초 가장 큰 관심사였던 제4신평사의 신규 진입 허용을 당분간 유보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장 규율과 제도 보완 없이 새 신평사를 도입하면 그 동안의 관행과 영업 경쟁만 심화될 것이란 금융위의 우려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30년 이상 이어져 온 3사 과점 구조의 폐해가 드러날대로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계속 인정한다면 오랜 시간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서 안락함에 취해 온 기존 신평사들의 악습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기존의 과점 구조를 완전히 깨 새 신평사에 빗장을 열고, 규율 및 제도 보완을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경쟁은 혁신과 발전을 유도한다. 고인 물 속에서 헤엄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미꾸라지 무리에 금융당국이 하루 빨리 신규 신평사란 '메기'를 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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