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이휘소 박사 39주기, 핵무기 개발설의 진실
39년 전, 1977년 6월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80번 고속도로. 88km 속도로 달리던 대형 트레일러가 타이어 펑크로 중앙분리대를 넘어 마주 오는 승용차를 덮쳤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를 운전하던 천재 물리학자 한 명이 숨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리. 한국 이름은 이휘소였습니다.
이휘소는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해 25살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71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기관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죠. 그는 노벨 물리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휘소라는 이름을 들으면 핵무기 개발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휘소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일까요?
실제로 이 박사는 개발도상국, 특히 군사독재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하는 데 매우 비판적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열린 학술대회 참석도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를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또 이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자로 핵무기 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게 물리학계의 정설입니다. 이휘소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다는 것은 소설이 만든 이미지일 뿐입니다. 이 박사의 유족들은 오히려 박정희의 '자주국방'을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로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여겼습니다.
이경희 디자이너 moda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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