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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소록도…100년의 기억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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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실 등 아픈 역사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국립소록도병원이 100주년을 맞았다.

▲국립소록도병원이 10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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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100년이다. 1916년 '작은 사슴'이 뛰놀던 소록도에 소록도자혜의원이 설립됐다. 1982년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곳에 우리의 또 하나의 이웃이 살고 있다. 한센 회복자(소록도 어르신들)들이다.

26일 찾은 소록도는 조용히 우리를 맞았다. 바다에는 배 몇 척이 떠 있었다. 온갖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적송은 늘 그곳에 있었다는 듯 깊은 자태를 뽐냈다. 짙은 초록으로 소록도는 '100년의 기억'을 간직한 채 불어오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았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중)= 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의 직원은 190명, 소록도 어르신들은 540명이다. 이중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503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균연령은 75세이다. 아픔이 없을 수 없는데 환자들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국립소록도병원

▲국립소록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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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김병인 할아버지(92). 김 할아버지는 자신이 이곳에 온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18살 때였어. 1946년 1월16일 소록도에 왔어. 잊어버릴 수가 없지"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세상이 확 바뀌었다"며 "1946년에는 감시도 당하고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방도 지저분했고 무엇보다 진드기 등 벌레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 할아버지는 "전남 영광이 내 고향인디 당시에 한센병에 걸리면 동네에서 쫓겨났다"며 "천대와 멸시가 심했다"고 말했다.

'독도 할매'로 통하는 명정순 할머니(82)도 만났다. 명 할머니는 유독 목소리가 컸다. 귀가 잘 들리지 않은 이유도 있는데 무엇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맛나게 부르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렁찬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명 할머니는 "내가 '독도 할매'가 맞다"며 환하게 웃었다. 명 할매(?)는 "1962년에 소록도에 왔는데 그때는 그나마 살만 했다"고 회상했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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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어르신들에게 소록도는 어떤 의미일까. 명 할머니는 "(소록도는)내 집이자 고향"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역시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은 '보리피리'라는 시를 통해 "고향 그리워"라고 노래했다.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사회적으로 한센인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는데 엄격히 말해서 소록도 어르신들은 한센병을 앓고 회복된 분"이라며 "소록도 어르신이라고 불러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소록도에는 어르신에 대한 차별과 천대 등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1935년 만들어졌던 '감금실'이 있다. 이 감금실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한센병을 앓고 있던 남녀를 감금시킨 것은 물론 강제로 단종시키는 등 인권유린이 악랄했던 곳이다. 지금은 역사의 아픈 흔적을 간직한 채 말이 없었다.

◆보리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 때 그리워(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중)=국립소록도병원이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탈바꿈하고 있다. 열악한 직원 숙소를 보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형철 국립소록도병원장은 "올해부터 직원 숙소를 보수하려고 한다"며 "1934년에 만들어진 직원 숙소가 그대로 있어 너무 열악한데 관련 예산을 확보해 보수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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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도 추진된다. 한센병박물관이 건립된다. '100년의 기억을 만나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념관 박물관은 'SOrokdo NAtional Hansen MUseum)'의 첫 글자로 따 '소나무(SONAMU)'로 정했다. 복합문화센터도 만들어졌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사를 거쳐 체육관동 등이 들어섰다. 중앙운동장의 잔디구장 조성도 시작된다. 이 시설을 통해 환자들이 체육 활동 등을 할 수 있다.

100년사 발간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그동안의 소록도 역사를 담은 100년사와 사진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박 병원장은 "국립소록도병원은 백년의 숨결을 지니고 있고 앞으로 천년의 입맞춤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통해 행복을 위한 동행에 손을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중)=고향이 그립고 어린 시절이 그립고 인간사가 그리운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소록도 어르신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천대와 멸시는 많이 사라졌는데 여전히 이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없지 않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랫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마리안느 수녀를 만나 "마리안느 수녀께서 숭고한 뜻을 갖고 평생을 소록도 어르신들을 위해 수고를 해 주신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며 "이런 분 옆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국립소록도병원이 한센인을 위해, 이들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 주기를 부탁드린다"며 "그동안 소록도 어르신들이 연세가 들면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국립소록도병원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공원에 위치한 하얀 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단순한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1935년 일제가 만든 감금실.

▲1935년 일제가 만든 감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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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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