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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18. 꼬우면 니가 부장 해! ‘인굿컴퍼니’

최종수정 2014.08.29 16:53 기사입력 2014.08.2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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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굿 컴퍼니' 포스터.

영화 '인 굿 컴퍼니' 포스터.


영화는 다면체이며, 관객은 럭비공이다. 다면체의 여러 사면(斜面)이나 모서리에 맞은 럭비공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영화에 대한 관점들이, 가끔 기상천외해지는 것은 저 다면체와 럭비공이 만나는 '경우의 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굿컴퍼니'는 유쾌함과 우울함이 퓨전으로 버무려진, 딱 꼬집어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는 맛의 영화다. 보기에 따라서 갖가지 다채로운 감상법들이 나올 법 하다. 예를 들면 경영 효율과 무단 해고의 문제라든가, 사고를 친 딸의 문제, 이를 테면 보스를 유혹해 아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심청이로 봐야 하나 따위, 포드 시스템 속에서의 생산 단위로서의 가장의 문제 등등.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 코드에 흥분하고 있기도 하다.
럭비공 의견들의 하나로 나는,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변화를 잽싸게 채택한 영화의 센스에 점수를 주고싶다. 그 변화라는 건, 요즘말로 '나이 파괴' '경력 파괴'라고 불린다. 얼마 전 경제면에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나보다 나이어린 부장이 온다면 모시고 살 것인가, 사표 쓰고 말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고, 참고 살겠다는 대답이 50%를 넘는다는 설문결과를 기사로 써왔다. 회의에서, 기사의 핵심은 뒤집어졌다. 사표쓰겠다는 사십몇 퍼센트를 중심으로 다시 쓰자는 쪽으로.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그러니까, 열명 중 네명은 나이 어린 보스의 비위를 맞추며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 셈이다. 영화는 바로 저 상황이다. 갑자기 나이 어린 보스를 맞이한 댄 포먼(데니스 퀘이드)은 욱하는 기분에 사표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 않다. 세번째 아이도 태어나고, 또 맏딸 대학도 보내야 하는 가장인 남자는, 갑자기 밥줄을 놓는다는 게 쉬운 일일 리 없다. 하는 수 없이 꾹 참고, 그는 스물 여섯살의 새파란 이사, 카터 듀리아(토퍼 그레이스)의 오른팔이 되기로 한다.

이쯤에서, 영화 감독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두리번거려 볼 필요가 있다. 감독은 누구의 편일까. 스물 여섯살 보스 편일까. 늙은 포먼 편일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는 관객의 말은, 감독이 늙은 포먼 쪽에 서있다는 걸 웅변하는 증거다. 왜 폴 웨이츠 감독은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늙은 직원에게 베팅을 했을까. 나는 한입경제에 나온 설문의 "사표 쓰고싶다" 사십몇퍼센트의 기분을 폴 웨이츠가 붙잡았다고 생각한다. 머리는 따라주지만, 가슴으로는 따라줄 수 없는, 합리주의와 조직혁신에 대한 반감과 불만. 이 코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코드가 먹히는 것은, 지금이 바로 그런 '혁신'의 초창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헤게모니가 완전히 두 손을 든 뒤에는,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그 이행기에 일어나는 역류를 타고 있다.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늙은 포먼을 어떻게 그려내느냐. 젊은 듀리아를 어떻게 그려내느냐. 이 잣대는 변화에 대한 대중의 자잘하고 사소한 기분들과 얽혀있다. 감독은 포먼을 비굴하게 그리지 않았고 우둔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끝까지 그가 지닌 자부심의 선과 낙천성의 힘을 지켜준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등굽은 아버지의 그림자에 감동하는 까닭은, 감독의 이런 배려에 힘입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는, 노자가 말한 장이부재(長而不宰) 시절의 폼나던 노인을 두둔하고 격려하는 쪽으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고 간다.

그렇다고 영화가 젊은 듀리아를 폄하하거나 깔보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할 만 하다. 그는 인간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으나, 결국 '늙음에서 비롯한 지혜와 성실성'이 오랫 동안 꾸려온 옛질서에 고개를 숙인다. 그가 한때 보스이긴 했지만, 그런 형식적인 계급장 이상의 질서를 나이 든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즉 그는 보스이긴 했지만 늙은 부하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이 파괴의 혁신은 바로 나이라는 질서가 주는 인간관계의 존경과 존중이, 조직적 질서 때문에 헝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쿨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 '기분학'이 문제다. 포먼도 더러워서 사표를 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나이의 질서와 직장 서열의 문제를 문제의 핵심으로 포착한 영화이다. 나이의 질서가 대변하는 것은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옛질서다. 직장 서열은 이제 막 시작하는 합리적이고 냉정한 신질서다. 영화는 옛질서에 손을 들어주면서, 신질서를 살짝 비웃는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뤘다는 점 자체가, 신질서의 위력을 홍보하는 셈이다. 영화에서 신질서의 대표자인 듀리아는 결국 조직을 떠났고, 구질서의 '오른팔'이 되라는 역제안을 받기까지 한다.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영화 '인 굿 컴퍼니'의 한 장면


'백전노장'이라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진짜 칭찬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백전노장은 새 것에 밀리는 헌 것, 즉 구조조정 1순위가 되었다. 이 영화는 연륜의 가격을 옛날 수준으로 인상한다. 직장에서도 '카랑카랑한 아버지 서열'은 내면적으로 건재하다고 외친다. 그러나 이건 서비스일 뿐이다. 영화가 현실의 눈물을 잠깐 닦아주는 것일 뿐이다. 구조조정으로 잘린 사람이 복직하고, 영토 확장의 광기를 지닌 회장 앞에 겁없는 바른 소리를 한 부하 직원이 경위야 어쨌든 멀쩡하게 살아남는 건, 영화이기에 부릴 수 있는 낭만이다. 그 낭만을 살짝 뒤집어보면, 당장 "더럽고 아니꼬와서" 사표를 쓰고 싶지만, 스트레스를 삭이면서 하루하루를 극기훈련하듯 살아가는, 늙은 부하들의 삭은 표정이 컴컴한 관객석 속에 숨어있다.

영화의 굿컴퍼니는 좋은 회사이기도 하지만, 좋은 동료이기도 하다. 좋은 동료가 생산하는 '상품'과 살벌하고 냉혹한 인재주의와 능력주의가 생산하는 '상품' 중에서 어느 게 더 나은가.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들이 자꾸 후자에 동그라미를 친다는 점이, 문제다. 이 영화는 기꺼이 전자에 굵은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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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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