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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사랑하는 이 남자, 왠지 내 모습 같다?

최종수정 2014.07.11 12:33 기사입력 2014.07.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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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 증후군, 不通시대의 고독한 자화상

-신문 방송 인터넷 미디어가 넘칠수록 소외감 커져
-당신은 누구와 통하는가,진심어린 친구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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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영화 '그녀 her'는 인공지능 OS(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머지않은 2025년. 이 남자는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의 직원이다. 고객의 의뢰를 받아 손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쓰는 게 아니다. 편지에 담을 내용을 말하면 컴퓨터가 손 글씨로 바꿔준다. 아이러니하다. 손 편지를 쓰는데 음성인식 컴퓨터를 이용하다니.

이 남자, 지루하다. 욕구불만이다. 매일 하는 일이란 게 다른 사람 연애편지 써주고 집으로 퇴근하는 게 대부분이다. 뜨거운 사랑을 했던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있다. 지루함에 다른 여자도 만난다. 첫 순간은 짜릿한데 별루였고 '엽기'까지 한 여자다. 욕구불만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구입한다. 사만다는 여성모드로 이 남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한다. 실제 '남자 vs 여자' 같이. 이 남자에 최적화된 운영체제이다. 손 편지 내용의 잘못된 문법을 고쳐준다. 도착한 이메일을 읽어준다. 외로운 밤, 사만다는 이 남자의 연인 역할도 한다. 손으로 만지지 못하지만.

이 남자, 처음엔 당황스럽다. '내가 OS와 사랑에 빠지다니'. 사만다 시스템은 이 남자의 행동패턴에 최적화된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결해 준다. 이 남자, 처음의 당황스러움을 넘어 이제 당당히 'OS와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한다. 심지어 친구커플과 함께 떠난 여행에 당당히 '사만다'를 동행시킨다. 동행이랄 게 별 것 없다. 작은 터치패드와 이어폰만 끼면 사만다는 늘 곁에 있으니.
이 남자에게 '사만다'는 단순한 운영체제를 넘어섰다. 사만다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사만다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사만다의 명령에 따라 거리를 헤매며 '낄낄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끝내 사만다가 이 남자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구의 OS인지 헷갈린다. 분명 이 남자에게 사만다는 OS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남자가 사만다의 OS가 돼 간다. 이 남자에게 사만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미디어'였던 셈이다.

◆인간 욕구불만, 미디어 발전시켜=인간은 미디어 동물이다. 미디어에서 고립되면 외롭다. 이런 인간의 속성이 미디어 발전을 이룩해 낸 원동력이다. 인간은 처음 구어(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은 한 사람이 죽으면 큰 소리로 울었다. 이 울음소리는 이웃마을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부음뉴스였다.

매번 큰 소리로 울다보니 목도 아프고 못할 짓이다 싶었겠다. 문자를 발명한다. 소리치는 것보다 적어 보내면 더 효과적이란 걸 안 거다. 적다보니 손이 아팠다. 죽을 지경. 활자를 만든다. 1450년 유럽에서 금속활자가 탄생했다. 팍팍 찍어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정보혁명이 시작된다. 활자가 나오면서 한 부류의 인간은 머리를 굴린다.

'모든 사람들이 소식에 관심이 있으니 이것으로 돈을 벌어볼까'. 1609년 독일에서 최초 인쇄 신문이 탄생했다. 1650년에는 일간신문이 나왔다. 신문에 광고하는 곳까지 진행됐다. 이미지를 강조한 최초의 잡지가 1665년 '주르날 데 사방'이란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된다.

인류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신문과 잡지는 이동성이 떨어졌다. 빠르게 소식을 전할 방법은 없을까.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을까. 제임스 맥스웰이 전자파를, 마르코니가 무선 전신을 발명하면서 라디오가 탄생한다. 라디오는 선사시대 구어뉴스 시대로 돌아간 셈이다. 말로 하는 뉴스였으니까. 시스템은 혁명적이었다. 한 곳에서 말하는 뉴스가 거의 실시간으로 이웃마을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까지 전송됐다.

라디오가 이동과 신속성은 갖춰졌는데 말만 들으니 식상했다. 욕구불만이 또 터져 나왔다. 1926년 존 베어드가 영상 기술을 완성시켰다. 텔레비전이 나온다. 영상미디어 시대가 펼쳐진다. 이쯤에서 만족할 만한데도 인간의 미디어 갈증은 여전히 '2% 부족' 상태였다. '왜 일방적 뉴스만 봐야 해?' '왜 니들(뉴스생산자)이 만든 것만 봐야 하느냐구?'

1991년 월드와이드웹(WWW)의 일반 공개는 이 같은 인간의 '2% 갈증'에 효과적이었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불균등을 어느 정도 없앴다. 소비자이면서 뉴스를 생산하는 시대를 인간은 열어 젖혔다. 여기에도 만족하지 못한 인간은 지금 '소셜 미디어'를 사용 중이다. '너와 나'를 관계망이란 시스템으로 친친 동여매고 뉴스가 없다면 죽음을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이인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스 미디어 역사'라는 책에서 "언론사에서 독자에게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는 것이 현재 미디어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그녀 her media'는=인간의 미디어는 아직 미완성이다. 욕구불만이 꿈틀거린다. '그녀'에 나오는 이 남자처럼 '사만다'라는 인공지능 미디어를 갖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영화 '그녀 her'에게로 돌아가 보자. 혹은 '그녀 media'라고 해도 좋겠다. '그녀 her media'인 사만다는 이 남자에게 "시공을 초월한, 물질계 공간이 아닌 곳에 나는 존재한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인공지능이다 보니 OS 스스로 꺼져 버린다. '그녀 her media'는 떠났고 이 남자, 다시 혼자다. 미디어로부터 소외된다. 이 남자, 사만다가 떠난 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진짜 '절친'을 찾아간다. 아파트 옥상으로 같이 오른다.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이 남자, 절친(여자)의 어깨를 소리 없이 받아준다.

신문? 라디오? TV? 인터넷? 소셜 미디어? 아니면 사만다? 여러분의 '그녀 her media'는 무엇이며 누구인가. 구어와 문자뉴스이든, 활자이든, 신문이든, 라디오ㆍTV이든, 인터넷이든, 소셜 미디어이든 욕구불만으로 탄생한 '그녀 her media'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소통(疏通)이다. 끊임없이 소통을 위해 인간은 미디어를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지금 또 다른 미디어를 찾고 있는 인류를 보면 아직 '100% 소통'에 이르는 미디어를 찾지 못한 것 같다.

'2% 부족한 소통'이다 보니 욕구불만은 계속된다. 또 다른 미디어를 찾을 것이다. 당신의 '그녀 her media'는 어떤 존재일까. 지금 곁에 있는, 바로 당신 앞에, 옆에, 뒤에 있는 사람에게 어깨를 기대라. 혹은 어깨를 내어주라. 당신의 'her'이며 'media' 이며 '소통'의 시작이다.

사만다는 이 남자를 떠나기 전에 선물을 하나 남긴다. 이 남자가 그동안 쓴 편지를 직접 책의 형태로 출판한 것이다. 이 남자 모르게 유명한 출판사에 이 남자가 쓴 글들 보냈고 출판사에서 대단한 호평을 내놓는다. 사만다의 노력으로 책으로 출판된다. 이 남자 무척 좋아한다. 최첨단 인공지능 OS가 잉크냄새 폴폴 나는 책을 만들어 이 남자에게 선물하다니? 아이러니한데 그것은 실체가 없는 사만다가 유일하게 이 남자에게 준 '소통을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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