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00점'을 맞은 시험지를 안겨주면 일로 쌓인 피로는 단숨에 가셨다. 아이 공부를 위해서라면 고된 일도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다. 부모세대는 자신을 제대로 돌볼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분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으려 했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는 게 먼저였고, 변변한 입을 것도 없이 가정과 자녀를 챙겼다.
부모세대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은 고된 일상 속에서도 정(情)이라는 게 있었다. 이웃들과 기쁨도 아픔도 나눴다.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위로했다. 비 오는 일요일이면 누군가 준비한 파전에 막걸리로 웃음꽃을 피우는 낭만도 있었다.
그런 것이 삶의 버팀목이었다. 팔다리, 어깨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지만, 병원을 가기보다는 값싼 연고를 바르며 "이제 괜찮겠지" 허허 웃던 그런 시절이다. 억센 손마디와 근육질 팔뚝을 자랑하던 그분들, 대한민국의 오늘을 일궜던 그들은 지금 왜소한 몸으로 변했다.
잘 나갔던 옛날 얘기라도 하려고 하면 "또 그 이야기냐"면서 손사래부터 치는 자식들 앞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하는 그분들은 지금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평생을 일했지만, 노후를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쏟아 부었다.
그런 부모세대인데 자녀들에게 버림을 받고 있다고 한다. 형제도 많은데 왜 내가 모셔야 하느냐면서 법정까지 가서 부양책임을 면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냉정해진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가보다. 요즘 '의리'가 사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의리 결핍의 시대, 누구를 탓하기보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의리의 가치에 공감한다면서 부모세대 외로움을 방치해서 되겠는가. 가끔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좋은 옷을 전하는 것만이 보답은 아니다. 그분들의 상실감을,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잡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다. 부모세대가 옛이야기를 할 때 공감하며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행복을 느낄지 모른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헌신적이었던 그분들의 청춘을 추억으로라도 되살리게 해준다면 그것이 진짜 의리의 실천 아닐까.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