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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 "고집스럽고 미련한 '서편제'의 송화, 나와 닮았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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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사랑가 부를 때 그렇게 눈물이 난다"...초연부터 지금까지 세번째 송화 역

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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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뜨소. 어서 어서 나를 보옵소서.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뜨소. 어서어서 소녀를 보옵소서."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 우여곡절 끝에 눈 먼 아버지 심봉사를 만나는 '심청가'의 한 대목이다. 애끊는 마음을 이토록 구슬프게 부르는 이는 심봉사처럼 눈이 먼 '송화'다. 득음을 위해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먼 길을 돌아돌아 이제야 재회하게 된 의붓동생 동호만이 말없이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이 장면은 뮤지컬 '서편제'의 마지막 대목이다. 흰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배우 차지연은 그렇게 '심청'이 되었다가, 다시 '송화'가 되었다. 얼굴에는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울고 싶지 않은데, 계속 눈물이 난다. 그동안 힘들어도 꾹꾹 참고 눌러왔던 감정들을 무대에서 '송화'를 통해 터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답답할 정도로 소리를 추구하는 '송화'의 모습이 본질적으로는 나와 닮은 것도 같아 또 울게 된다. 그래서 '서편제' 공연을 하다보면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작품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배우 차지연(32)을 만났다. 영화로 제작된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가 뮤지컬로 초연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차지연은 줄곧 빠지지 않고 '송화'역을 맡았다. 올해가 세번째다. "초연 때는 '아,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걸음걸이는 어떻게 하지?' 별별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한결 편안해지고 안정됐다. 하지만 그 첫 '송화'의 투박하고 서툴고 거친 느낌이 너무 좋다. 판소리를 할 줄도 몰라서 냅다 지르기만 했는데, 아마 관객들은 '저 배우, 저러다 죽겠구나' 했을지도 모른다."

차지연의 엄살과 달리 그는 이 작품으로 2011년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 2012년 제1회 예그린어워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지막 심청가의 한 대목을 열창하는 동영상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돌려볼 정도로 유명하다. 차지연은 판소리를 친근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외할버지는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송원 박오용 옹(翁)으로, 차지연은 어린 시절부터 고수(북 반주자)로 활동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송화'와 '동호'가 춘향전의 사랑가를 부르는 대목이다. 관객들은 그 장면이 가장 재밌다고 꼽는데, 차지연은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송화의 먹먹한 마음이 느껴져 "사랑가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겨우 참는다"고 말했다.
서편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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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뮤지컬 배우를 시작"했던 게 2006년 '라이온킹'부터였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애절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그의 가창력은 이후 '마리아 마리아', '드림걸즈', '선덕여왕', '아이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카르멘' 등의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어느 새 '비극에 강한 배우'라는 수식어도 얻게 됐다. 그가 맡은 캐릭터들은 여느 뮤지컬 속의 가녀리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성 캐릭터와 달리 홀로 운명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늘 맡은 역할이 비극의 주인공"이었지만, 그 속에서 차지연은 자신과 닮은 그녀들을 발견했다.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열등감이 많은 점은 '드림걸즈'의 '엘피'와 닮았다. 고집스럽고, 미련하리만치 자신이 하는 것을 추구하는 모습은 '서편제'의 송화와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자신 주변의 모든 일에 헉헉대고 있는 모습은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와 같다. 사랑 앞에서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돼 있는 점은 '아이다'나 '카르멘'과 닮았다. 단, 난 '카르멘'처럼 남자들과 잘 어울려 놀고 유혹할 만한 성격은 못된다. '카르멘' 작품할 때도 '호세'를 유혹해야 하는데 얼굴이 빨개져서 혼났다. 이 남성들이 모두 나를 위해 싸울 때는 정말이지 숨고 싶었다. 관객들은 이 장면이 이해가 될까?(웃음)"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팬들은 차지연을 '차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차지연은 좋지 않은 평이나 악플을 보고 몇날 며칠을 밤잠을 설칠 정도로 '예민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힘든 점을 내색하기 싫어할 정도로 '사려깊으며', "내가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욕심이 많다'.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그것을 진심을 다해 연기했을 때 관객 몇 분만이라도 그걸 알아봐주면 된다. 그분들이 10년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내 공연을 찾아와준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티켓파워'가 아닐까. 지금은 그 기초공사를 쌓는 과정이기 때문에, 천천히 차곡차곡, 꼼꼼하게 잘 쌓아올리고 싶다. 이제는 재밌고, 신나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 올바른 배우의 길을 가고 싶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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