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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감동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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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세번째로 무대로 옮겨..'동호' 이야기 강화, 신곡 두 곡 첨가

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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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뮤지컬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은 집안 거실에 걸려있는 액자 속 흑백사진처럼 가슴에 두고두고 오래 남는다.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서로를 마주하게 된 송화와 동호는 가슴에 묻어둔 많은 말을 꾹꾹 눌러두고, 북을 치고 노래한다.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뜨소. 어서 어서 나를 보옵소서. 인당수 풍낭 중에 빠져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뜨소. 어서어서 소녀를 보옵소서."

심봉사처럼 눈이 먼 송화가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을 열창한다.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 심청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 소리가 어찌나 깊고, 한이 맺혀 있는지 듣다보면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긴 방황 끝에 돌아온 동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송화의 소리에 추임새를 넣고 장단을 맞춘다. 큰 무대에 마주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이제야 비로소 행복해 보인다.
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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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편제'는 우리에게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것이 2010년으로, 올해로 벌써 그 세번째 무대를 맞는다. 대중이 잘 알고 있는 텍스트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은 보통 밑져야 본전이기 일쑤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지켜내기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무대라는 공간이 주는 제한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이 같은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낸다. 오히려 고루하게마저 느껴졌던 '서편제'를 공감과 감동의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힘이 크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동호'의 이야기다. 소리꾼 아버지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만 커간다. 유봉과 의붓누나 송화와 함께 소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지만 동호는 결국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이들 곁을 떠난다. 록 음악을 부르는 가수가 된 동호의 비중이 이전 공연보다 커졌고, '마이 라이프 이스 건(My life is gone)'과 '얼라이브(Alive)' 등의 신곡이 추가돼 캐릭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브로드웨이 출신으로 '동호' 역에 캐스팅돼 화제가 된 마이클 리는 아직 대사톤이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록 음악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맞춤형 옷을 입은 듯 하다. 마이클 리 특유의 담백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도 동호와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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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지연은 전작 '카르멘'의 화려하고도 강렬한 화장과 의상을 벗어던지고, 말간 맨 얼굴에 흰 저고리를 입고 등장한다. 초연 때부터 '송화' 역을 맡아 이 작품으로 2011년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 2012년 제1회 예그린어워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소리'에 미친 아버지와 반항하는 '동호' 사이에서 '송화'는 두 사람을 위로하며, 마음넓게 다독거린다. 결국 아버지의 욕심으로 눈까지 멀게 됐지만 송화는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읊조릴 뿐이다. 꾹꾹 참아내기만 한 송화의 속마음은 시간이 흐른 뒤 그가 터뜨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관객들은 그 한과 아픔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차지연의 소리는 그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무대 연출도 돋보인다. 하얀색 한지로 가득 채운 무대는 마치 소원지를 빼곡하게 걸어놓은 서낭당같다. 유봉과 동호, 송화가 떠나는 구불구불한 유랑길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울며, 눈송이가 날려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어린 송화와 동호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여백의 미도 살아있다. 여러모로 관객들에게 잘 만들어진 창작뮤지컬을 보는 기쁨과 뿌듯함, 감동을 선사해줄 작품이다. '송화' 역에는 이자람과 장은아, '동호' 역에는 송용진, 지오가 트리플 캐스팅됐다. 5월1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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