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⑪]난 대붕아닌 참새다… 참새가 어때서?
'소크라베이컨'은 말씀하셨다, 너 자신을 아는 것이 힘이다
홈쇼핑 세일만 보면 엉덩이가 들썩들썩
쌓여있는 물건 보며 "휘둘리고 살았구나"
사들여도 행복 없고, 집만 복잡해져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바지 세일하는데 필요하면 얘기해요.'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TV를 튼다. "다시 없는 기회. 세벌 모두 000원에 드립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자동주문전화로 연결해 주세요." 친절한 쇼핑호스트의 말에 가슴이 콩당콩당 뛴다. 내가 사고, 아내가 사고, 이렇게 산 바지가 지난 겨울에 6벌이다.
채널을 돌린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인문학 강의가 펼쳐진다. 인문학 광풍이다. 종교인, 철학자, 교수, 소설가 모두가 나서서 "자신을 찾으라"고 외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산단다. 그런데 어떻게 찾지? 외우기도 힘든 철학자 몇 명의 이름만 읊조리다 끝나기 일쑤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자기를 찾는 지름길이다.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는 자전적 이야기를 썼다. 회복하기 힘든 이별의 상처를 입은 그녀는 1년 이상 여행을 떠난다. 이를 통해 다시금 음식과 사랑을 즐기면서 영적으로 자기 중심을 잡는 삶을 일궈낸다. 식욕과 성욕은 기본이다. 여기서 멈추면 짐승이다. 한 발 더 나가서 알파(α)를 찾아야 주체적인 사람이다. α는 사람마다 다르다. 사랑을 성욕으로 비하했다고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도 인정한 자연스런 욕망이다.
직업이 글 쓰는 사람(기자)이고 글을 좋아하니 나에게 α는 글쓰기다.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글쓰기에서 끊임없이 "너 자신을 알라"가 쏟아진다. 소설가 이태준은 "자기 것을 쓰라"고 한다. 아동문학가 이오덕은 "만들어내는 글짓기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글쓰기 하라"고 얘기한다. 세계적인 작가들은 십중팔구 똑같은 얘기를 한다. 자기를 아는 게 기본이다.
나를 알고 있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휘둘리고 살고 있었다. 뭘 살 때 그렇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사라고 외치는 걸 사는 게 많다. 안쓰고 팽개친 물건도 많다. 그래도 또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 또 지른다. 사람 보는 눈도 없었다. 사람을 요모조모 보고 판단하지 못하고 이득을 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에게 쉽게 넘어갔던 기억도 있다. 당신도 남의 말에 휩쓸린 기억이 있거나 잔뜩 사두고 안쓰는 물건이 많다면 '중심이 없지 않나' 반성해 봐야한다.
우리 또래는 줄 맞춰 사는데 익숙하다. 성적에 맞춰 학교 가고 직장 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간 경우는 많지 않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마누라 한 명에 애 둘에 집 한 채에 자동차 한 대. 표준적인 삶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줄 설 데도 없다. 줄 서서 따라가면 됐는데 앞으로는 혼자서 갈 길을 가야한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결정하려면 나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데 훈련이 안돼 있다.
자기자신보다 외부의 기준을 따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목욕탕에 불이 나 뛰어 나올 때 어디를 가릴 것인가. 얼굴인가 치부인가. 얼굴을 가리면 체면 때문에 남의 기준에 따르는 것이고 치부를 가리면 당당하게 나의 기준에 따르는 것이다. '창조 인문학' 전도사로 통하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기준의 생산자인 나로 살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인들의 말은 '술 찌꺼기'와 같으니 욕망의 주인으로서 자신을 무한신뢰하고 멋대로 살아보라고 제안한다. 외부의 기준과 눈을 따르지 말고 자기와 자기의 욕망을 믿고 따르라는 얘기다.
최 교수의 말을 밑천 삼아 성현의 말 하나를 '술 찌꺼기'로 만들어 보자. 장자는 멀리 나는 대붕을 비웃는 참새(또는 메추라기)를 나무랐다. 좁은 숲속에서 먹을 것을 찾고 몇 길 정도 날아오르는 참새가 구만리를 날아오르는 대붕의 뜻을 어찌알겠냐고 꾸짖는다. 큰 시련을 극복해야 높이 멀리 날고, 높은 데서 내려다 봐야 정확히 본다는 의미다. 이제는 참새가 꾸짖는 장자에게 얘기해 줄 때다. "옴마! 앙대요! 참새가 더 재밌단 말이에요."
이 정도면 주인으로 살만하다. 좋아하는 일을 안다. 물신주의를 극복했고 대인관계의 중심도 잡았다. 체면치레를 벗어났다. 자기기준을 가지고 치부를 가리면서 당당하게 사람을 대한다. 장자와도 엉겨봤다. 방문을 나서다 '순돌이(시츄)'가 싼 오줌을 밟았다. 걸레를 빨면서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바라본다. 내가 주인인가, 나를 부리는 강아지가 주인인가. 다시 헷갈린다. 공부가 과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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