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가 직접 찾는 전력업계
전력 대량 공급, 속도 경쟁 중
엔비디아 '800V 직류' 표준 제시
직류 기반 설비 투자·개발 속도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한국 전력기기 업체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속도가 기존 전력망 확충 속도를 완전히 압도하면서, 전력 확보가 사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빅테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접 전력망 설계도를 들고 한국 업체를 찾아가 물량 확보를 읍소하는 처지다.

엔비디아도 K전력에 러브콜…빨라질 800V ‘직류시대’[직류시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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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 전력업계와 여러 차례 미팅을 거듭한 끝에 최근 LS일렉트릭과 1700억원 규모의 전력 인프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투자가 연간 400조원 규모로 커지면서 빅테크 간 전력 확보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AWS의 이 같은 행보도 전력 효율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전력 손실을 줄이고 밀도를 높이기 위한 설계 경쟁이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한층 가속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는 기존 교류 방식의 한계를 넘기 위해 보다 급진적인 설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국내 주요 전력기기 업체들에 데이터센터용 인프라를 800V 수준의 직류(DC) 기반으로 설계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AI 서버의 폭발적인 전력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전력 변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현재 엔비디아는 국내 업체들과 물밑에서 구체적인 데이터센터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힐튼시그니아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힐튼시그니아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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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력 설비는 교류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 산업용 전압도 아시아권은 380~400V, 미국은 208V부터 600V까지 각기 다른 체계를 사용한다.


전력 흐름을 보면 구조는 더 복잡하다. 외부에서 들어온 교류 전력은 변압기를 거쳐 전압을 낮춘 뒤 무정전 전원장치에서 직류로 바뀌어 배터리에 저장된다. 이후 다시 교류로 변환돼 서버로 전달되고, 서버 내부 전원공급장치에서 또다시 직류로 바뀌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이처럼 교류와 직류를 반복해 바꾸는 과정에서 단계마다 2~3%씩 전력이 손실된다는 점이다. 전체 시스템으로 보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효율이 누적되는 구조다. 엔비디아는 이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력 공급 단계부터 직류로 설계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기존 구조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K전력에 러브콜…빨라질 800V ‘직류시대’[직류시대]① 원본보기 아이콘

관건은 기존 인프라와의 호환성이다. 800V 직류를 기준으로 시스템이 바뀌면 장거리 전력 수송을 맡는 고압 교류 송전망과의 연결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변전과 배전 설비,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구조까지 전반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배전망도 7.6㎸, 13.2㎸, 38㎸ 등 여러 전압 체계가 혼재돼 있어 이를 하나로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전력업계는 그동안 교류 중심 구조를 유지한 채 비효율을 감수해왔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요구를 계기로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기준을 제시하자 전력업계도 이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논의에 그쳤던 직류 전환이 실제 투자와 기술 개발로 이어지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직류 전환 논의는 있었지만 속도가 더뎠다"며 "엔비디아가 방향을 제시하면서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업계 표준보다 앞서가는 '엔비디아 표준'


엔비디아도 K전력에 러브콜…빨라질 800V ‘직류시대’[직류시대]① 원본보기 아이콘

전력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전력 인프라 전체가 바뀌는 신호로 보고 있다. AI 수요가 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직류 기반 고전압 시스템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50TWh, 2035년 1300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사용이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직류 기반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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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직류 생태계가 안착하려면 전력기기 업계의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다. 배채윤 LS일렉트릭 기반기술연구단장은 "데이터센터 시장이 전력업계에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인데 인프라 재편이 필요해 아직은 다들 진입이 어려운 상태"라며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업체 하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업체가 뛰어들어 파이가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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