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드 실기'의 저술]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인간이 버리고, 줍고, 묻어온 것들의 역사'
버려진 인간의 잔재속에 문명이 묻어 있고 인간이 걸어온 뒤안길을 따라가 볼 수 있는 흔적이다. 역사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과거의 관습에 관해 귀중한 증거를 밝혀내게 만드는 유적, 바로 ‘쓰레기’다.
"1893년 파리 근처 자벨(Javel)이라는 지역에 프랑스 최초의 소각장이 세워지면서 쓰레기소각을 두고 기나긴 논쟁이 시작됐다. 위생학자들은 불의 정화기능을 역설했고, 농학자들은 토양에는 천상의 만나(manna)나 다름없는 귀한 유기물의 보고를 태워 없애는 것에 격분했다. 전반전의 승리는 농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농업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소각처리를 금지한 것이다. 1896년 최초의 쓰레기분쇄 작업장이 파리 북쪽 생투앙에 생긴 후 이시레물리노, 로맹빌, 이브리에도 하나씩 세워졌다. 그러나 농학자들의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지역 당국은 1906년 생활 쓰레기의 소각을 다시 허용했다."(본문 중)
프랑스 농학 전문가 '카트린 드 실기'의 저술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인간이 버리고, 줍고, 묻어온 것들의 역사'(도서출판 따비 출간)는 쓰레기를 만들고, 버리고, 활용하고, 싸워온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인 카트린 드 실기는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권력과 돈, 학문의 격돌로 파악한다.
"쓰레기는 ‘환경 마피아’들에게 돈벌이가 좋은 사업거리다. 이들은 싼값에 공터를 사들여 공모자들과 함께 쓰레기처리장을 지었다. 쓰레기 한가운데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와 다른 유럽 국가에서 들여온 독성 산업폐기물이 묻혀 있다. 마피아가 운영하는 기업들과 부패한 행정관료들, 부정행위가 개입한 경쟁 입찰은 합법적인 쓰레기관리 체인을 무너 뜨린다." (본문 중)
그러나 오늘날 쓰레기의 수거와 재활용, 폐기는 막대한 이권이 개입된 거대 산업이됐다. 주로 쓰레기를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를 두고 돈이 오간다. 실례로 우리는 가정에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종량제 봉투를 쓴다. 여기서 나온 돈을 힘 있는 자들이 그냥 둘리는 만무. 쓰레기 처리는 ‘오염자-부담’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환경 마피아’들의 돈벌이 수단이다.
쓰레기 자체만으로도 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19세기, 넝마주이는 쓰레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넝마주이는 엄격한 위계와 관할구역을 가진 동업조합에서 일했다. 넝마주이가 취급한 수집품은 뼈, 금속, 가죽, 빵부스러기까지 다양해 거리의 청소부였을 뿐 아니라 재활용과 물물교환의 기수 노릇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아베 피에르’가 설립한 엠마우스 공동체는 쓰레기 수거를 통해 빈민들을 지원하고 공동체를 먹여 살릴 자금을 얻는 등 구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인간과 쓰레기는 때로 투쟁하고 때로 활용하며 공생해 왔다. 그런 인간과 쓰레기의 공생 연대기를 풀어가는 책의 전반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회피와 경멸의 대상이던 쓰레기는 어떤 이들에겐 생계수단이 되고, 어떤 이들에겐 거대산업이 됐는 지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쓰레기는 점점 더 커져가는 골칫거리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점점 줄어들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와 돈은 늘어난다. 결국 해결책은 쓰레기를 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지구가 쓰레기에 뒤덮이지 않기 위한 전략과 처리 방법의 혁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눈길을 끈다.
또한 저자는 쓰레기와 함께 한 인류의 역사를 살피면서 "쓰레기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유용한 자원이자 유머와 흥취로 가득한 보물 덩어리"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안내하는 쓰레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과 쓰레기가 평화롭게 공존할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따비 출간/카트린 드 실기 지음/ 이은진·조은미 옮김/값 1만8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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