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아시아경제신문 연재 소설 '짐승들의 사생활'은 개발, 폭력, 세대간 갈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그런 현실속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지 고뇌, 갈등을 펼치는 힐링소설이다. 김영현 작가가 집필하고, 박건웅 화백이 삽화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소설은 170여회를 넘기면서 각 주인공들의 갈등구조가 더욱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삽화를 그리는 박건웅 화백은 "완전한 삶을 갖추지 못한, 상처투성이인 주인공들이라서인지 더더욱 애정이 간다. 주인공들을 화폭으로 옮기는 동안 우리 삶이 소설 속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을 통해 우리 현실을 마주 보는 것이 작지 않은 고통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어느날 30대 중반의 주인공 하림이 군대 친구 동철을 만난다.대학 때 운동권 출신으로 시인인 그는 학원강사로 밥벌이를 하다가 그만둔 상태다. 동철은 그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윤 여사라는 여인을 데려와 하림에게 인사 시킨다. 도회풍의, 미술을 좋아하는 윤 여사는 하림에게 자신의 고향마을에 사는 고모할머니의 개 두마리가 엽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서 인근 펜션의 주인 노인(송사장)이 엽총으로 쏘아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하림은 혜경이라는 동창생을 사랑하지만 혜경은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려고 한다. 때마침 출판사 편집장인 옛 애인이 만화 시나리오 작업을 부탁한 것도 있어 하림은 윤 여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소읍인 그 마을에서 하림은 마음이 순수한 소연이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20대 초반의, 문학지망생인 소연에게 시를 가르쳐주며 하림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런 한편으로 작업장으로 옮겨온 후 마을사람들이 월남용사 출신의 펜션 노인과 딸을 적대시하며 따돌리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밤 총소리에 놀라 나와 보니 오토바이를 탄 누군가가 개 두마리를 끌고 가서는 펜션 앞에 던지고 가는 것을 목격한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개를 죽인 사람으로 펜션노인을 지목하고, 노인의 딸은 이를 부인하며 강하게 반발한다. 이때 하림이 나서 궁지에 몰린 딸의 편을 들어준다. 그 과정에서 하림은 펜션 노인과 딸이 이곳에 기도원을 짓고 싶어하고, 윤 여사는 마을 이장 등을 이용해 땅을 매입, 개발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녁이 돼서 펜션 딸은 자신을 편 들어줘 고맙다며 포도주를 한병 가져온다. 하림은 그녀로부터 노인의 굴절 많은 삶, 한국 현대사의 폭력에 짓이겨진 삶에 대해 듣는다. 포도주를 마신 후 하림은 그녀를 데려다 주고 오다가 이장과 마주친다. 그녀를 몰래 사랑하는 이장은 그녀와 하림과의 사이를 오해하고 하림을 거세게 몰아 붙인다.
소설 속 무대는 개발과 폭력, 욕망이 들끓는 우리 현실의 축소판이다. 소설 모티브인 '개의 살육'은 우리 공동체가 생명에 가하는 폭력을 상징한다. 여기서 개발이나 욕망은 폭력의 도구들이다. 피로사회로 규정된 현실에서 사람들은 분노에 차 있고 행복하지 못 하고, 사납고, 화가 나 있으며 세대간에는 단절과 갈등이 심화돼 있다. 이런 현실의 첨예함이 개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엽총으로 개를 살육하는 장면은 김 작가가 직접 목격한 사건이기도 하며 본질적으로 인간을 상대로 벌어진 일이다. 소설 속의 무대도 비록 한정된 곳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배경 전체로 확장된다.
"도심은 재개발, 재건축, 부동산 투기, 집값 상승 등으로 욕망의 도가니를 이룬다. 이런 도심의 속성들이 개발이 안 된 전원마을로 전이되고 있다. 욕망의 속성이다.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우리 사회가 갖는 혼돈과 맞닥뜨린다. 개발의 속성 자체가 인간성의 파괴인 셈이다."
암울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짐승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둥바둥 살아간다는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런 현실에서 희망이 있는 지는 폭력적 상황을 일단 살아내고, 살아 남아야 확인할 수 있다는 데 비극성을 더한다. 작가 역시 '짐승들의 사생활'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김 작가는 "상처 입은 주인공들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다. 그건 사랑, 소통과 연대, 희망에 대한 신념이다. 이는 우리 삶의 지속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인공이 다 구원받을 수는 없다. 끝까지 순수하고자 하는 인물이 살아남아 구원의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인공들에게서 누가 희망을 갖고 세상의 폭력에 맞서며 불편한 서사를 완성하게 될 지 자못 기대된다.
한편 경기 양평에 칩거하며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김 작가는 최근에 아주 특별한 외출을 했다. 지난 2일, 1977년 서울대생 헌법 비방 및 학생 시위 유도 사건(긴급조치 9호 위반)에 대한 선고 판결로 다시 법정에 서기 위해서였다. 이날 김 작가는 방청석의 통곡과 흐느낌 속에서 37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허망했다. 내게 유죄를 씌웠던 곳으로부터 무죄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선고 판결은 마치 잡범 다루듯 아무 감흥 없이 이뤄졌다. 그건 여전히 심판을 받아야 할 이들에게서 심판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문과 구타, 그리고 0.7평의 독방에서 산 시간이 결코 내게 헛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행운이었다.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었다. 그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모순을 더 깊게 알게 됐으며 소설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오랫동안 현실의 폭력성, 그 안에서 실존적인 고민을 펼쳐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감옥에서 기인한다."
소설 연재 작업을 하는 동안 김 작가와 박 화백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 작가는 긴급조지 위반 무죄 판결 외에도 창작소설 '낯선 사람들' 영화 판권 계약, 바보숲 느림보 등불학교 개교 준비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바보숲 느림보 등불학교는 홍일선 시인, 이인휘 작가를 비롯, 문학 예술인들이 모여 사회 각층과 소통을 위해 만드는 공간이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들을 꾸준히 형상화해 온 박 화백은 비전향장기수의 삶을 다룬 만화집의 프랑스어판 출간 작업을 하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사진 = 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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