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상생의 길 찾아라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국제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저성장시대가 시작됐다.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특히 올해는 국제통화기금(IMF)보다 더 극심한 소비경직에 내수시장이 얼어붙었다. 수입원자재 가격은 원화평가절하로 부담스럽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는 가격상승은 정부의 물가안정의지에 반한다.

진퇴양난의 제조사는 결국 가격인하를 통한 판매량증대로 돌파구를 찾는다. 경쟁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그러나 판매량증가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오히려 한번 떨어진 가격은 계속 떨어져야 수요가 꿈틀대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격으로 원상복귀 시키기 어려운 탈출구 없는 가격 전쟁에 휘말릴 뿐이다.


◆자동차시장, 가격전쟁 시작됐다= 올해 국산차 내수시장 침체가 계속 지속되면서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몇몇 소형 차종에서 가격을 내렸다. 하반기에는 더욱 가격할인이 더해진다고 한다.

바로 일본 수입차들이 엔저효과를 등에 업고, 유럽 수입차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를 이유로 소비자들의 최종구매가격을 떨어트렸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들이 옵션을 높이는 대신 가격을 유지시키는 전략이 더 이상 내수시장의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간파한 수입차 브랜드는 한시적인 할인정책으로 더 빠르게 침체된 국내시장에 정착하고 있다. 신차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에게는 기다릴수록 떨어지는 가격에 흐뭇하다. 가격인하 결정을 한 제조사의 전략이 통한다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공격적인 자체 프로모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차 시세를 검색하는 기존 구매자들의 속마음은 타들어간다. 구매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중고차 가격은 미리 떨어질 가격을 반영해 더 많이 떨어져 있다.


고급스포츠카 브랜드지만 조그만 포르쉐를 세계 9위 완성차 브랜드로 탈바꿈한 전 최고경영자(CEO) 벤델린 비데킹(Wendelin Wiedeking)은 "우리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가격을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중고차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도 막을 것이다"라며 "수요가 떨어진다면, 생산을 줄이지 가격은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극복하며 전세계 모든 드라이버들이 타고 싶은 브랜드로 성장했다.


◆핸드폰 구매는 어디서…KT 페어 프라이스 정책= 고가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었다. 하지만 동일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구매가격과 요금제는 천차만별이다. 최근 같은 모델을 구입한 직장동료에게 구매가격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상대적 박탈감과 '나는 왜 이렇게 비싸게 샀을까'라는 좌절을 맛보기 때문이다. KT는 건전한 휴대폰 유통시장을 정착시키기 위해 2011년 페어프라이스 정책을 도입했다. 소비자와 대리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정가격을 제시해 고객을 안심시켜 휴대폰을 구매하도록 돕는 취지에 시작했다.


거대한 이동통신사인 KT도 휴대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보조금)이 부담스러웠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텍 등 제조사들이 스마트폰 기능전쟁과 가격전쟁을 벌이면서 신제품 가격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보조금은 널뛰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통사의 약정보조금과 대리점의 자체 보조금 등이 더해지면서 소비자가 받게 되는 보조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지만 이 눈덩이는 소위 기민한 소수의 소비자들만 받는 혜택일 뿐 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겐 '카더라' 소문일 뿐이다. 애초에 제조사는 가격거품을 제거하고 고객이 인지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통신사와 판매대리점은 투명한 판매 가이드라인과 보조금을 줄여, 더 많은 혜택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생색내기가 아닌 고객만족을 위해 한 단계 앞선 프로모션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은 제값을 지불했다는 안도와 함께 제조사와 이통사 브랜드를 자신있게 추천할 것이다. 가격전쟁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가격전쟁의 시작은 제품과 고객의 두려움에서 시작= 폰 노이만(von Neumann)의 게임이론 중 3인 결투가 가격전쟁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A, B, C 세 사람이 결투를 하게 됐다고 가정하자.


세 사람이 모두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살아남을 때까지 돌아가며 총을 쏘기로 했다. 그런데 C는 총을 매우 잘 쏘는 명중률 100%의 특급 사수다. B는 C보단 못 쏘지만, 80%의 명중률을 갖고 있다. A는 세 사람 중 가장 못 쏘는 60%의 사수다. 공정한 결투를 위해 명중률이 낮은 A부터 한발씩 쏘기로 한다. 다음은 B가 쏘고, 마지막은 C 차례다. 결투가 끝날 때까지 이런 순서로 계속 돌아가며 쏜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쏘기로 한 A는 어떻게 이 결투를 시작해야 할까. 가장 경쟁력이 낮은 A는 조급함과 두려운 마음에 B와 C를 쏜다면 그는 둘 중 살아남은 자로부터 총을 맞게 될 것이다. A는 보다 침착하게 허공을 향해 쏘면 된다. 그리고 합리적인 이성을 지닌 B와 C는 역시 이 결투에서 최종승리를 하는 방법은 서로 죽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상대방을 제거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재의 가격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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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강자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가격할인정책을 과감히 선언하며 가격인하 전쟁을 촉발시켰다.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전투구 양상에서 지금은 각 사별 차별화전략으로 전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즉각적인 맞대응에서 차별화된 가격인하 정책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은 마트에 납품하는 수많은 납품처들에게 숨통을 열어줬다. 오히려 소비자 구매성향에 최적화된 쿠폰 등을 통해 더 많은 제품들에 경쟁력 있는 가격을 줄 수 있다.


김용현 와이프라이싱 파트너스(YPP) 대표는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해 가격전쟁을 시작하면 제조사는 주식이, 대리점은 이익이, 소비자는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진다"며 "시장을 리딩하는 기업일수록 냉철하게 고객에게 더 줄 수 있는 가치를 찾아서 제공해야 가격전쟁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호 기자 k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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