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랑말이 끄는/쬐그만 협궤열차/여천을 지나,/야목을 지나,/사리를 지나,/고잔을 지나,/소래를 지나,/푸른 달빛 도장 찍는/월곶을 지나,/수원에 이르러 되돌아오는/사라져간 녹슨 추억의/덜컹 달구지//그 옛날 파발마보다 더디게 달리는/황소에 부딪쳐 넘어지기도 하는/흔들가마//비릿한 게 냄새 풍기는 사람들/고잔에서 한 잔/사리에서 한 잔/야목에서 한 잔/여천에서 한 잔/송도에서 한 잔 걸치게 하는/늘 바람 설레는 황마차(幌馬車)//날 어두워져/재갈매기들 제 식구인 양 데불고/새우잡이 발동선들 소래 개펄로 기어들 때/철로에 걸터 앉아/수리 안 된 사랑을/몰래 꺼내어 손질하다가/얼른 주워 탈 수 있는/건들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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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의 '내 마음의 협궤열차2'


■ 시는 노래이며 구비(口碑)이며 문자비(文字碑)이다. 나무에 새겨놓은 것, 돌에 새겨놓은 것, 금속에 새겨놓은 것보다 더 깊이 새길 수 있는 것은, 시에 새기는 것이다. 사라진 협궤열차를 천년 이천년 일만년을 기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박물관이 아니라, 이 시 한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황마차(幌馬車)는 포장마차다. 술집 포차말고 서부영화에서 보던 가림막을 두른 그 포장마차 말이다. 시인은 협궤열차를 황마차로 여긴다. 수원까지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 사이사이 역마다 주막들이 빠짐없이 끼어있으니 포장마차가 술집마차가 되는 건, 이가림의 협궤마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녁답 바다 앞 철로에서 수리 안 된 사랑을 꺼내놓고 몰래 손질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보다 아릿하다. 아픈 마음 속 가시내 하나 그 정거장들 하나쯤에 슬쩍 내려놓고 온 적도 있으리라. 취기를 핑계 삼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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