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궤열차는 서서/기적만 울리고 좀체 떠나지 못한다/승객들은 철로에 나와 앉아/봄볕에 가난을 널어 쪼이지만/염전을 쓸고 오는/바닷바람은 아직 맵차다/산다는 것이 갈수록 부끄럽구나
분홍 커튼을 친 술집문을 열고/높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나그네를 구경하고 섰는 촌 정거장/추레한 몸을 끌고 차에서 내려서면/쓰러진 친구들의 이름처럼 갈라진/내 손등에도 몇 줄기의 피가 배인다/어차피 우리는 형제라고/아가씨야 너는 그렇게 말하는구나/가난과 설움을 함께 타고난/(......)
신경림의 '군자에서' 중에서
■ 열차는 사람이 아니지만,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려 복닥복닥 살다보니 이미 사람이나 진배없는 존재가 되었다. 시간에 딱 맞춰가야 하는 법이건만 이런저런 사정들이 다 보이는데 어찌 야박하게 끊겠는가. 그런저런 신경을 쓰다 보니 기적만 빼액 울리고는 또 한참을 더 서 있다. 신경림은 답답해서 군자 정거장에서 내렸나 보다. 분홍 커튼을 친 술집 문앞에 앉은, 높은 구두 아가씨를 지나간다. 여기서 시인이 무슨 말을 하시나 가만히 기다려 보는데, 끝내 '그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우리는 형제라고/아가씨야 너는 그렇게 말하는구나"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났다. 이 점잖은 시인은 "오빠! 놀다가"라고 말했을 그 말을 저렇게 돌려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 형제론(論)으로 시를 밀고 간다.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형제. 막장까지 내려온 피붙이의 호명. "오빠!" 그 소리를 듣고는 문득 기겁하여 얼른 기차에 올라탔다. 열차처럼 숨을 헐떡이며 생각한다. '오빠!"의 힘이, 비릿한 사람내 나는 협궤열차를 떠밀고 있구나.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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