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

전 재산을 기부하고 간 홍용희(오른쪽) 한재순 씨 부부의 생전 모습<연합뉴스>

전 재산을 기부하고 간 홍용희(오른쪽) 한재순 씨 부부의 생전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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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0일 날개없는 천사가 명동성당을 찾아왔다. 그는 정진석 추기경을 만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잘한 일이 없습니다. 좋은데 써 주세요"라고 말하며 1억 원짜리 수표 9장과 '옹기장학회'라고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옹기장학회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자신을 죄인이라 말한 천사는 지난달 28일에 세상을 떠난 한재순(미카엘라.83)씨다. 그는 이틀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 홍용희(비오.82)씨와 함께 채소장사, 쌀장사를 하며 다섯 남매를 키웠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해진 내의와 양말을 기워 입으며, 먹고 싶은 것도 참았다. 한 씨는 며칠 뒤 한 수도원 내 영성센터 건립기금으로 1억 원을 더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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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83년 평생을 자신을 희생하며 모은 10억 원을 정 추기경에게 전하고 그의 통장에 남은 것은 280만원이 전부였지만,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 씨의 둘째딸 홍기명(55)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노래를 부르셨다. 도중에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했다.


숙제를 마친 한씨 부부는 지난달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홍용희씨가 지난달 26일 지병으로 별세한지 이틀만에 아내 한씨도 갑작스런 뇌출혈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두 사람의 장례 미사는 지난달 30일 대치동성당에서 함께 치러졌다. 정진석 추기경은 추도사를 통해 "자매님이 기부한 돈은 단순히 재물이 아니라 부부 평생의 삶"이라고 말했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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