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 '현금이 좋아'..여전히 투자 안해
S&P500기업 보유 현금 1조1200억弗..금융위기 때보다 59% 증가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미국 기업들이 여전히 보유 현금을 늘리기만 할뿐 투자에는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P500 비(非)금융권 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59% 급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자를 통해 보도했다.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및 단기 투자금 규모는 2008년 3분기 7030억달러였지만 지금은 1조1200억달러로 늘어났다.
WSJ는 기업들이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점은 결국 경기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 경기 둔화와 주가 하락 등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지출을 줄이고 대신 현금 보유를 더 늘려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26일 기업들이 현금 지출을 빠르게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빈말이 되고 말았다. 무디스의 스티븐 오만 애널리스트는 10일 "기업들이 (지출을) 중단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현금을 계속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고 입장을 바꿨다.
가정용 로봇 제조업체 아이로봇의 존 리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향후 전망이 보다 명확해질 때까지 지출과 투자를 크게 늘리는 것에 신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로봇의 보유 현금은 1년전 9880만달러에서 현재 1억2300만달러로 증가했다. 리히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주식시장 급락을 고려해 내년 고용 계획도 연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의류업체 폴로랄프로렌의 로저 파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현금을 보유하며 계속 보유적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지출 계획을 줄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라는 "소비자가 변하고 경기가 더 압력을 받게 된다면 내년과 내후년에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폴로랄프로렌의 보유 현금은 2008년 6월말에는 7억1080만달러였지만 지난 7월 초에는 9억8100만달러로 증가했다.
바이오 기업 아코다 세라퓨틱스의 론 코헨 최고경영자(CEO)는 신용등급 강등을 염려했다. 그는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해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며 "지금 현금 지출을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코헨은 보유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나 머니마켓 시장에 투자해 평균 1%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을 확보하면서 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수익률보다는 현금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현재 환경에서는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는 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에 소극적이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현금성 자산은 2분기 말 기준으로 528억달러에 달한다. 1년 전에 비해 43%나 급증했다. 구글의 현금성 자산 규모 역시 1년 전에 비해 30% 급증해 390억달러로 늘었다.
기업들이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점은 경기 하강의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8%에 불과했다. 기업의 자본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지만 웰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제이 뮬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의 투자는 성장과 소득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기업들도 있다. 화학제품 제조업체 캐봇은 1000억달러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캐봇의 경우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달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캐봇의 에두아르도 코데이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시장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미국 경기 둔화가 해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급 효과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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