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실천할 것이 있다면 바로 겸양이다. 단 한 가지 배워야 할 가르침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중국 명대의 주자학자인 왕양명은 제자들에게 늘 겸손할 것을 강조했다. 유가의 성현인 공자가 예를 중시한 배경도 그렇다. 늘 편한 것을 찾고자 하는 본성을 예로 다스리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거부 임상옥이 전하는 ‘계영배’ 고사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학식이 고매하거나 재산이 많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세상이치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이치를 일찌감치 깨달은 인물이 바로 ‘록펠러’였다. 미국의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20's)를 만끽한 주인공은 자본가들이었다. 대공황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위협했다.

자본주의는 약자들의 가슴 속에 씻을 수 없는 상흔(傷痕)을 남겼다. 지난 1950년대 이미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내다본 록펠러는 비이성적인 빈부 격차의 확대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엿보았다. 그가 기부한 천문학적인 돈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윤활유였다. 사회공헌의 신호탄이었다.


부자들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미국 사회에 지금도 면면히 흐른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 주커버그를 비롯한 미국 기업인들이 사유 재산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동양에는 록펠러보다 1000년 이상 먼저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인물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군왕인 부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세월을 보좌한 범리가 주인공이다. 그는 군왕을 도와 오나라 정복에 성공하자, 부귀영화를 포기한 채 ‘도주공’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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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월나라 인근의 제후국들을 떠돌며 중계무역으로 번 돈을 농민들에게 분배한다. 사회공헌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지혜이기도 하다. 동양사는 가산을 몰수당하고 패가망신한 부자들의 잔혹사다.


조선시대 전라남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실례다. 범리, 이지함, 최부잣집은 이러한 이치를 꿰뚫어 본 선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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