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9일 빈소에서 만난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의 얼굴은 초췌했다. 두눈은 다소 충혈돼 있었고,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모친인 고(故) 신덕진 여사의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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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고인이 유명을 달리하기 전 며칠 동안 이 회장이 모친의 병상을 직접 지켰다고 한다. 때문에 유독 심하게 피곤한 기색을 보였던 것.

새벽까지 빈소를 지킨 그에게 신 여사의 존재는 각별함 그 자체다. 고인은 1923년생으로 당시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만큼 배움이 깊고, 깨친 여성이었다. 하지만 1944년 이동찬 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모든 사회활동을 끊었다.


그리고 이 명예회장의 코오롱 그룹 경영을 위한 내조와 자녀교육에 열중했다. 이 회장의 누나 네명과 여동생은 모두 이화여대를 동문이다. 이 회장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학사, 미국조지워싱턴대학교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땄다. 신 여사에게 자녀들의 성공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신 여사의 사랑만큼이나 이 회장을 비롯한 2세들의 가족 사랑도 깊었다. 이 회장이 직접 병원을 지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계 30위권의 재벌 총수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그 만큼 어머니를 아꼈다는 것.


실제로 신 여사는 아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한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사태를 맞았다.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던 이동통신부문(당시 017)을 매각하면서 코오롱 그룹은 재무적으로 안정을 찾았지만 이 회장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장 아쉬웠던 기억으로 IMF당시 이동통신 지분매각을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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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도 그를 지켜준건 어머니였다. 당시 칠순의 나이에도 신 여사는 이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한다.


또 서울 성북동의 울타리 없는 옆집에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오래도록 받아왔던 것도 이 회장의 사모곡(思母曲)을 더 슬프게 한다.


이윤재 기자 gal-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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