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회장의 사모곡(思母曲)
[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9일 빈소에서 만난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의 얼굴은 초췌했다. 두눈은 다소 충혈돼 있었고,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모친인 고(故) 신덕진 여사의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코오롱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고인이 유명을 달리하기 전 며칠 동안 이 회장이 모친의 병상을 직접 지켰다고 한다. 때문에 유독 심하게 피곤한 기색을 보였던 것.
새벽까지 빈소를 지킨 그에게 신 여사의 존재는 각별함 그 자체다. 고인은 1923년생으로 당시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만큼 배움이 깊고, 깨친 여성이었다. 하지만 1944년 이동찬 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모든 사회활동을 끊었다.
그리고 이 명예회장의 코오롱 그룹 경영을 위한 내조와 자녀교육에 열중했다. 이 회장의 누나 네명과 여동생은 모두 이화여대를 동문이다. 이 회장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학사, 미국조지워싱턴대학교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땄다. 신 여사에게 자녀들의 성공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신 여사의 사랑만큼이나 이 회장을 비롯한 2세들의 가족 사랑도 깊었다. 이 회장이 직접 병원을 지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계 30위권의 재벌 총수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그 만큼 어머니를 아꼈다는 것.
실제로 신 여사는 아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한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사태를 맞았다.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던 이동통신부문(당시 017)을 매각하면서 코오롱 그룹은 재무적으로 안정을 찾았지만 이 회장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장 아쉬웠던 기억으로 IMF당시 이동통신 지분매각을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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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도 그를 지켜준건 어머니였다. 당시 칠순의 나이에도 신 여사는 이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한다.
또 서울 성북동의 울타리 없는 옆집에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오래도록 받아왔던 것도 이 회장의 사모곡(思母曲)을 더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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