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소민호 기자] #지난 9월 경기도 시흥 능곡지구의 한 아파트단지. 이른바 '실버사원'들이 단지를 활보했다. 만 60세 이상 고령자로 구성된 이들은 단지내 시설물 안전·순회 점검과 함께 비어있는 주택에 대한 점검·관리, 장애인·독거노인 등 취약세대에 대한 돌봄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 들어 처음 만든 실버사원제도 덕에 다시한번 근로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LH는 일할 능력과 의사는 있으나 여건이 허락되지 않던 고령자에게 인생 제2막을 설계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임대주택단지. 이곳 사회복지관은 입주민들의 인기가 높다. 각종 교양강좌 덕분이다. 다양한 연령층에 걸맞게 실시되는 강좌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경로식당이 운영되고 아동들의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은 물론 난타교실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한 입주민은 "입주 초기에는 주변 단지 주민들의 기피대상 단지였지만 이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공공 임대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임대주택 초창기 시절, 임대아파트 거주 아이들은 놀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끔해진 단지와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입주민들의 건전한 공동체의식이 정착하며 변화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입주민들의 노력과 함께 공공부문의 지원이 어우러지며 성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입주할 때만 해도 여기는 부랑인촌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어요. 아침부터 술마시고, 툭하면 싸움나고 해서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죠."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선화씨(가명)의 회상이다. 10여년 전 입주 당시 공동체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장부다운 그녀의 노력은 이제 공동체 문화를 크게 바꿨다. 인근 여느 분양단지나 비슷할 정도로 깨끗해진 단지에서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이웃간 교류가 이뤄진다. 서로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보이지 않으려 했던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아파트 단지 뿐만이 아니다. LH가 매입해 운영중인 다가구 임대주택단지에서도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입주 초기에 매입 임대주택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눈초리가 정말 차가웠어요. 못사는 사람들에 장애인들까지 들어와 산다고 하니 우려섞인 시선들이 많았죠." 중랑구 묵동의 한 매입임대주택에서 장애인 가정을 운영하는 '동천의 집' 김영문 사무국장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동천의 집은 1951년 설립돼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법인이다.


김 국장은 "LH 같은 공공에서 매입해 장애인이나 최저소득계층이 집단으로 살게 되면 주거지역 전체가 혐오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장애인 수용시설이나 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서다.


하지만 불과 6개월도 안돼 이런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무엇보다 깨끗해진 건물환경 덕분이다.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몸놀림이 부자연스럽지만 이곳에 사는 4명의 장애인들은 매입임대주택의 청소를 전담하다시피 한다. 계단 물청소를 비롯해 자발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분리수거도 이들의 몫이다. 살아가며 자연스레 부딪힐 수밖에 없는 꼭 필요한 일들을 이들이 도맡는데 비해 실제로 거부감을 느낄만한 요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종종 중랑천이나 인근 뒷산으로 놀이삼아 산책을 나가기도 하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가워할 정도가 됐다고도 귀띔했다. 이젠 아랫집 등에서 전을 부쳐 보내주는 등 적극적인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도 했다.


공동주택이나 다가구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에서 공히 인식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입주민들의 노력과 함께 LH 등 공공부문의 지원역할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지어놓고 그 다음은 '나몰라라' 할 수는 없다. 임대주택이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LH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LH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올해 첫 도입한 실버사원제도 역시 이 같은 차원에서 이뤄졌다. 실버사원들은 9월말로 업무가 끝난 뒤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LH가 조사한 결과 삶의 만족도가 34.2%에서 70.5%로 무려 106%나 상승했다고 응답했다. 근로활동을 통해 고령자들의 삶의 질이 대폭 향상되었음을 시사해준다. 89.4%는 현재의 근무조건으로 근무를 더 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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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는 임대단지를 살기 좋은 주거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지원하거나 주택관리업체와 지자체, 전문단체와 협력해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주부사원 돌봄봉사단이나 연구임대 입주자 합동결혼식이 LH의 직접 참여 프로그램이라면 휴식공간 조성이나 장애인 이동통로 정비, 마을축제 등은 관리업체와 함께 실행하는 사업이다. 지자체나 전문단체 등과는 영구임대 사회적기업 설립이나 지역자활센터, 국공립 보육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LH 관계자는 "정부나 전문가 등에서도 임대주택 활성화와 주거만족도 제고를 위해서는 커뮤니티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며 "단편적인 복지서비스 제공보다는 종합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민호 기자 s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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