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경영비법을 묻다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강연은 퀴즈(?)의 연속이었다.
쉽게 답이 나올듯하다가도 금새 말문이 막힌다. 정답도 없다. 근사치만 있을 뿐이다.
10일 휴넷이 주최하고 아시아경제신문이 후원하는 월례 CEO포럼의 강사로 나온 김형철 연세대 교수(철학과)는 '소크라테스에게 오늘의 경영을 묻다'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청중인 CEO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강연 시작과 함께 영화 '실미도'의 한 대목을 보여줬다.
# 실전을 방불케하는 외줄타기 훈련 장면. 훈련 책임자인 안성기는 대원들에게 낭떠러지 사이의 외줄을 건너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밑에 있는 훈련 조교들에게 실탄을 지급하고 35초가 지나면 발사하라고 말한다.
# 6명의 조원을 이끌고 외줄을 건너던 설경구는 중간쯤에서 위기에 봉착한다. 앞서 가던 부하 한 명이 고소공포증으로 멈칫거리는 바람에 뒷 사람들까지 멈춰선 것.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실탄을 맞을 판이다. 설경구는 그 부하에게 줄 밑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고 그가 줄에 매달려 길을 비키자 나머지 대원들이 무사히 외줄을 건넌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일시중지'된다. 그리고 김 교수의 질문이 이어진다.
"안성기는 총을 쏘라고 지시해야 할까요? 아니면 훈련상황이니까 약속을 깨고 총을 쏘지 말아야할까요? 설경구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줄에 매달려 있는 그 부하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의 희생을 무릅쓰고 나머지 대원을 계속 지휘해야 할까요?"
리더의 약속을 묻는 질문이었는데, CEO들의 답은 엇갈렸다. 리더의 약속은 생명과 같으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고, 훈련이니 총을 쏘지 말아야 한다는 답도 나왔다.
설경구의 판단에 대한 답도 엇갈렸다. 자신의 지시를 믿고 따른 그 부하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CEO와 반대의 답을 제시하는 CEO도 있었다.
설경구는 돌아가야하고 안성기는 총을 쏘지 말아야 한다는 절충형 답도 나왔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답을 말해주지 않고 질문만 해댔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웠던, 그래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고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던 소크라테스처럼 집요하게 청중석에 앉아 있는 CEO들을 괴롭혔다. 각종 곤란한 상황을 제시한 뒤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CEO는 명령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리더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김 교수는 부하 병사들의 만족도를 최고로 이끌었던 미국의 한 항공모함 함장 이야기를 실례로 들었다. 함장이 백 명의 부하들을 일일이 면접하며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 배에서 지내며 가장 만족하는 것, 가장 불만인 것, 가장 개선해야할 것이다.
세가지 질문에 대한 병사들의 답을 모아 300페이지 가량의 개혁 가이드가 완성됐고 , 함장은 이를 선별하여 행정에 반영한 결과 부하들이 모두 만족하게 됐다고 한다.
철학적 사유의 효용은 또 있다. 쓸모없던 것을 필요한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즐거운 전복이다. 이른바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다.
전구가 발명,보급되자 폐업 위기에 처했던 한 양초 회사가 공기를 주입해 물에 뜨는 비누를 개발해 기사회생한다. 세계최고의 생활용품제조업체 P&G사를 있게한 ‘아이보리’ 비누의 탄생비화이다.
생산 과정에서 부러진 불량품 소시지를 주부들에게 싼 가격에 공급해 엄청난 매출을 올린 일본의 ‘하나마나 소시지’사의 성공사례도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바꾼 유연한 사고의 성공사례에 해당된다.
김 교수는 강연 중 '올바른 경영자'가 되기 위한 행동요령도 제시했다.
“리더는 마음 속의 선글라스를 벗어던진다”가 첫 번째이다. 선글라스를 낀 우물안 개구리에게 ‘푸른색 바다(블루오션)’를 보여주려면 먼저 선글라스를 벗겨야 한다는 것이다. 안된다는 선입견, 부정적인 사고를 없애는 게 시작이라는 메시지였다.
두 번째는 “부하들에게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 이솦 우화에 나오는 '소금인줄 알고 솜을 지고 강물에 스스로 빠진 당나귀' 이야기를 들려준 뒤 문제는 '헐리우드 액션'을 남발하는 당나귀가 아니라 주인이라며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처방책으로 당나귀에게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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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전문가는 정년이 없다. 리더는 자신에게 십년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1만시간의 법칙' 또는 '10년의 법칙'으로 유명한 이야기로 한 가지 일에 10년을 쏟아부으면 전문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후기) 김 교수는 강연이 끝날 때까지 안성기와 설경구의 선택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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