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밀리어네어(SlumdogMillionaire)'는 최근 인도를 알린 대표적 영화다. 슬럼가 출신의 한 젊은이가 퀴즈쇼에 나가 연거푸 이겨 일약 백만장자가 된다는 줄거리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인도 슬럼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살지 못할 것 같은 판자촌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빈민들의 참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상영되자 인도인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영화가 인도의 어두운 면만 보여주는 등 실상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네루대학교 교수들도 인도에 빈민촌이 존재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심하지는 않다며 영화를 격렬히 성토했다. 이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인도 대도시에 널려있던 슬럼가는 최근 많이 사라졌고, 빠르게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필자는 언론인의 신분으로 인도 정보기술(IT) 발전상을 취재하기 위해 뭄바이를 처음 방문했다. 이 때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는 거대한 슬럼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끝 모르게 게딱지처럼 늘어서 있던, 버려진 시골 화장실 같던 빈민가들. 처참한 가난의 참상에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얼어붙었다.

그러나 요즘 뉴델리나 뭄바이 등 인도 대도시에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슬럼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2년간 인도에 체류하며 예전에 목격한 대규모 슬럼가 현장을 비롯해 여기저기 찾아가 보았으나, 슬럼들은 해체되고 깨끗이 정리돼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 빈민들이 줄어들고 빈민 문제가 해결됐다는 사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인도 빈곤문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


2007년 중순 인도 정부 산하기관인 인도 국가샘플조사기구(NSSO)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인도 전체 인구의 77%에 달하는 8억4700만명이 하루 20루피(약 500원) 이하의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NSSO는 또 하루 9루피(216원)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는 비율도 6.4%(70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실 이 통계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루 20루피라니, 사실 20루피의 돈으로는 뭐 살 게 없다. 인도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작은 아이스크림 한 개 값이 길거리에서 20루피 정도 한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값도 보통 50루피를 웃돈다. 시에서는 20루피로 생활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도 전체 인구의 70%가 거주하는 가난한 시골에서는 가능하다. 시골에서야 교통비도 들지 않고 자신이 농사 지은 쌀로 먹고 산다면 하루 20루피로 근근이 생계유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구가 전체 인구의 77%인 8억5000만명이나 된다니 잘 믿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대도시에서 슬럼이 사라지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인도 빈곤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슬럼독'들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최근 인도 경제가 고속 성장한다고 하나 농민과 빈민들은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됐다. 시간이 갈수록 도시와 농촌 간, 부자와 빈 자간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성장만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제성장에 대한 반감만 확대시켜 향후 성장에 치명적 장애를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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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중국에 이어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지만 빈곤문제는 인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성장을 반대하는 세력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 인디아 포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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