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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기]부활 채제민③ 김태원에게 보낸 편지

최종수정 2011.03.06 01:35 기사입력 2010.05.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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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민(오른쪽)이 부활로 함께 콘서트 무대에 선 이승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제민(오른쪽)이 부활로 함께 콘서트 무대에 선 이승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형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1999년 여름. 채제민은 착잡했다. 답답한 심경은 편지지에 옮겨졌다. 미안함 묻은 서정적인 문장들. 수신자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었다. 편지봉투를 만지작거리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활 탈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의 편지. 결정은 자의가 아니었다. 편지 두 번째 구절처럼 어쩔 수가 없었다.

채제민은 여섯 번째 앨범부터 부활에 합류했다. 연주가로 활동하던 중 받은 최승찬의 제의가 계기가 됐다. 최승찬은 조용필 밴드인 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드 등을 담당한 부활의 원년 멤버다. 티삼스 뒤 다시 들어가게 된 밴드. 채제민의 마음은 설레었다.

“티삼스 뒤 모시게 된 문영배 선생님께서 늘 ‘드러머는 밴드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기회가 부활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푼 기대로 시작한 밴드. 그러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부진한 앨범 판매 탓은 아니었다. 멤버 사이 갈등이 심화됐다. 김태원과 최승찬이 자주 의견충돌을 빚었다. 다툼은 오래가지 않아 결국 사단이 났다. 최승찬이 멤버들과 함께 팀을 탈퇴했다. 채제민도 무리에 포함됐다.
“나를 데려온 승찬이형의 종용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배신자로 낙인찍힐 게 두려웠다.”

보컬 김기연마저 성대결절로 이탈한 부활. 남은 건 김태원뿐이었다. 채제민은 괴로웠다. 함께 한 리더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책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학교 다닐 때도 잡지 않던 펜을 집어 들었다. 본심을 편지에 써내려갔다.

부활을 나온 뒤 채제민은 많은 공연과 앨범에 연주가로 참여했다. 이승환, 이승철, 신승훈, 변진섭, 박효신, 윤종신, 포지션, 김범수, GOD….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선희다. 공연이 지루해질 것을 우려해 콘서트에 연주가들의 차력 쇼를 넣었다. 도사 가발을 쓰고 벽돌을 깨며 드럼을 쳐야 했다.

물론 이보다 수월한 공연이 더 많았다. 헤드윅과 같은 뮤지컬에서는 배우들의 대사가 절반 이상인 까닭에 틈틈이 새우잠을 청하기도 했다.
다양한 공연과 음반 참여. 주머니는 넉넉해졌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이전부터 변하지 않던 바람. 밴드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

3년 뒤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부활이었다. 2002년 함께 작업하던 이승철이 합류하며 자연스럽게 드럼을 맡을 수 있었다. 재회한 김태원의 표정은 밝았다. 그가 쓴 편지의 효력이었다.

“고개 숙이고 있던 내 어깨를 두들기며 ‘잘 해보자’고 했다. ‘편지를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사실 채제민이 쓴 편지는 하나 더 있었다. 수신자는 이승환. 연유는 비슷했다. 밴드를 탈퇴하며 준 여운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김태원은 웃으며 말했다.

“밴드 탈퇴 때마다 편지로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데, 아주 상습범이다.”

채제민(왼쪽)이 함께 공연한 김장훈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제민(왼쪽)이 함께 공연한 김장훈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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