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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여유 그리고 ‘댐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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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귀한 약속에 30분 넘게 늦은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선배와 오랜만에 단 둘이 오붓한 저녁을 하기로 약속했으나 일정이 겹쳐 결례를 했습니다. 미리 전화해 당초 약속시간을 30분 늦췄지만 그 시간보다도 또 30분이 훨씬 지나 약속장소에 도착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동 중 전화로 서울의 교통난을 탓하며 변명했지만 실은 출발부터 늦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는 다소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주었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난다며 오히려 걱정해 주었습니다. 기다림이 무료할 텐데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도 전혀 짜증 없이 나를 대했습니다.
그도 성질 급하다는 언론인인데 어디서 오는 여유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약속시간을 어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늦은 사람을 구박부터 하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인양 몰아치지만 그 선배의 자상하고 다감한 모습에는 선한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저는 시간에 인색한 편입니다. 약속을 잡을 때부터 정확히 10분 단위로 계산하고 후배가 조금 늦을라치면 그를 호되게 몰아칩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사가 그렇습니다. 약속시간은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이지만 남의 늦음을 양해해주는 아량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나에게 길게는 1시간여를 참아 준 선배의 여유는 새로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천히 사는 삶, 여유로운 삶을 권하는 ‘슬로 라이프’ 운동을 주창한 쓰지 신이치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는 저서 ‘행복의 경제학’에서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느린 삶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일교포 2세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경쟁에 쫓겨 지내기보다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삶의 진정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시간의 소비를 우리들 삶 속에 늘려나가며 여유를 갖는 것이 슬로 라이프가 말하는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는 “사람들은 풍요의 환상을 좇아 효율성과 생산성, 경제 성장과 소비 증대 등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결과 생태계가 무너지고 온갖 분쟁이 발생하며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고 병들게 됐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여유로운 삶을 게으름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유는 게으름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게으름은 삶의 에너지가 저하되거나 흩어진 상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여유는 삶의 방향성과 초점이 분명하고 자신의 열정과 재능이 변색되지 않으며 남에게 베푸는 생활을 영위함을 말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나지만 게으른 사람은 우울, 분노, 불안, 두려움 등 부정적인 요소들에 쌓여 있습니다. 그들은 또 시간을 귀중히 여기지 못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여유로운 사람이 가지는 시간과 게으른 사람이 가지는 시간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게으른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은 다른 자산과 달리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특이한 도구입니다.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며 그들은 항상 시간에 쫓겨 허둥댑니다.

시간 관리의 권위자인 한 교수는 “시간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에 따라 시간의 노예가 되느냐 시간의 지배자가 되느냐 결정된다”며 우선순위에 따라 일하고 일하는 시간과 휴식시사간을 조화롭게 구성함으로써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삶을 유연하게 운영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시간 관리의 본질적인 목적은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라며 살기 힘든 세상에 여유를 즐기며 살라는 말이 자칫 사치처럼 들릴지 모르나 여유는 성공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여유 없는 삶을 산다면 경주마처럼 가련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 시간 관리의 묘미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경영이론에 ‘댐경영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댐을 건설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물을 흐르도록 놔두면 아쉽게도 물의 가치를 살리지 못합니다. 단숨에 물이 불어나 홍수가 나기도 하고 반대로 가뭄이 들기도 합니다. 댐은 하늘이 준 물을 낭비하지 않고 흐르는 물을 조절하며 수력 발전에 이용하는 등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회사 경영에도 댐이 필요합니다. 당장 하루하루 이익내기가 급한데 댐 아니 저수조도 만들 여력이 없다고 푸념하지만 회사를 면밀히 점검해 보면 작은 여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댐경영은 한마디로 여유 자원을 갖는 경영을 말하며 경제 여건에 약간의 변동이 있거나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제품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오르는 일을 사전에 막아줍니다.

마치 댐에 담아 둔 물을 필요에 따라 조금씩 조절해 흘려 보내듯 기업의 자금도, 생산품도, 인재도 상황에 따라 적재적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재의 댐경영은 기업의 가장 여유 있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당장 수익과는 무관한 듯 보이나 결국 회사에 큰 기여를 하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나서면 누구나 바쁜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 중에도 허둥대는 사람과 조금은 여유 있는 사람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자신의 일정과 시간을 다시 점검하고 작은 여유나마 찾아보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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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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