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무렵에 서울 남산타워 아래로 올라가 보시죠. 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기기묘묘한 수만 개의 자물쇠들이 그물철망에 걸려있습니다. 그 자물쇠들은 다들 입을 꼭 다물고 깍지를 끼듯 부둥켜안고 몇 달 몇 해를 그런 식으로 매달려 있는지 모릅니다.


그건 주인 없는 자물쇠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사연을 담은 임자 있는 사랑의 자물쇠입니다. 누가 강제로 열어보기 전에는 그렇게 매달린 채로 쌍쌍이 껴안고 또 한해를 넘기며 녹슬어 갈 것입니다.

연인들은 저마다의 인연을 담아서 자물쇠를 잠근 후 각자 열쇠를 하나씩 나눠 갖고 가던지, 숲속 저 멀리로 열쇠를 던져버리곤 사라집니다. 아무도 그들만의 자물쇠를 열 수 없도록 말입니다. 해마다 그날이면 다시 그곳을 찾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라지겠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덧 남산은 ‘추억의 성지’가 되어 사랑자물쇠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회상에 젖은 눈빛으로 자물쇠를 매만지다가 둘 중 하나를 풀어서 가져가는 자물쇠 주인들의 애달픈 뒷모습도 간혹 보입니다.

수천 수만 가지의 사연을 안고 걸려있는 사랑의 자물쇠 위에 다시 미니 자물쇠가 하나 둘 걸리는 것은, 드디어 사랑이 결실되어 2세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야지요. 이쯤 되면 익명의 자물쇠 걸기 운동은 남녀의 사랑확인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로 세포분열을 해도 괜찮을 듯 보입니다.

사랑의 자물쇠를 현대자동차 노사의 기본급 동결처럼 노·사간에 상생의 약속을 다짐하는 현장이나, 깨끗한 정치인과 후원자, 고아들과 후견인, 또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결연에 훈훈한 이벤트거리로 등장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산에 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한국젊은이들의 문화를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가슴에 담아가는 현장을 보며 또 하나의 작은 한류(韓流)가 태동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600년 넘은 고도 서울에다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서 역사성을 부여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서 생명 없는 상징물을 건설하기보다는, 남산 한 구석에서 은밀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남녀의 사랑자물쇠들에서 신선한 스토리텔링을 찾는 것도 서울을 발견하는 잔잔한 혁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남산은 케이블카 외에도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랐던 돌계단과 중앙도서관, 그리고 화사한 봄의 벚꽃과 식물원과 순환도로처럼 기억하는 인자들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남산은 소주 한 병 동무삼아 오른 밤에 수많은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보금자리가 없음을 서러워했던, 어느 촌놈의 상경기가 시작되는 무대일 수도 있겠죠. 시대의 아픔을 안고 우뚝 선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울분을 삼켰던 우국지사들도 그 중의 한 외로운 시민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각자의 삶에서 ‘남산’하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씩은 다들 있을 겁니다. 문득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바로 이 애국가 2절의 첫 소절을 떠올리며, ‘남산 위에 저 사랑의 자물쇠’를 확인하는 연인들의 뜨거운 입김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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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때인지라···.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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