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
30년 경제관료 · 공기업 사장까지
뜨거운 열정...한때 정치권 꿈도
$pos="L";$title="";$txt="";$size="174,343,0";$no="2009101611082302369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정공법으로 승부하는 해결사'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의 인생 3막이 시작됐다. 지난 2월 말 대한석유협회로 둥지를 옮기면서부터다. 오랜 관료 생활과 공기업 수장에 이어 정유 업계를 대변하는 '입'으로서 그의 인생은 고되지만 지치는 법이 없다.
오 회장이 협회를 이끈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다 돼간다. 유수와 같은 시간 앞에 오 회장은 협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협회장으로서 제 역할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가를 떠난 이후 공기업 경영에 실패를 겪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가 전하는 "이곳 협회가 예전에 맡았던 거대 조직에 비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업종을 대표하는 곳으로 매우 중요한 기관임을 느낀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 회장의 인생 서막은 지난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농림수산부 공무원 생활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2000년 특허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기까지. 그 사이 청와대 경제비서관, 산업자원부 차관보 등 요직을 거치며 30년 동안 '강직한 '경제 관료로 살았던 그다.
공무원 옷을 벗은 뒤 오 회장은 현재의 로템인 한국철도차량과 강원랜드,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지내면서 부패에 물든 공기업의 조용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 가스공사 사장 시절 공기업 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퇴진을 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오 회장은 결국 정공법으로 4년 만에 명예를 되찾기도 한 인물이기도 하다. 해외 자원개발의 가능성을 보고 잠시 몸담았던 예당에너지도 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한 때 정치권 진출의 꿈을 키우기도 했던 그는 요즘 '자신과의 타협'이 부족했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활짝 열린 인생 3막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약력
▲고려대 법학과, 고려대 행정대학원
▲제9회 행정고시 합격
▲행정사무관(1971~1982)
▲상공부 농촌공업과장, 구주통상과장(1982~1985)
▲주독일대사관 상무관(1985~1988)
▲상공부 정보기기과장, 전자정책과장, 산업정책과장(1988~1991)
▲대전 EXPO 조직위 운영본부장(1991~1994)
▲상공자원부 공보관(1994.03~1994.12)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1994.12~1996.01)
▲대통령 경제비서관(1996.01~1997.05)
▲산업자원부 통상무역실장, 무역투자실장(1997.05~1998.09)
▲산업자원부 차관보(1998.09~1999.05)
▲제14대 특허청장(1999~2000.08)
▲한국철도차량(現 주식회사 로템) 대표이사 사장(2000~2001)
▲제3대 한국기술거래소 사장(2002.02~2002.08)
▲강원랜드㈜ 대표이사 사장(2002.08~2003.08)
▲한국가스공사 사장(2003~2005)
▲예당에너지 회장(2007~2009)
▲제18대 대한석유협회 회장(2009.02~현재)
◇상훈
▲홍조근정훈장(1994)ㆍ황조근정훈장(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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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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