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의 잣대가 바뀐다?'
올들어 주식과 금, 국제 유가를 포함한 주요 상품까지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국채는 예외였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가격은 연초 이후 6.5% 하락했다. 지난해 무려 21% 급등했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인플레 헤지가 안전자산 조건 = 통상 경기가 악화될수록 우량 회사채나 국채로 시중 자금이 몰리는 것은 지급불이행의 위험이 낮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와 달러화, 금 등 세 가지 자산이 경기 하강기에 글로벌 투자자금이 몰리는 대표적인 투자처였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는 현상은 다소 이례적이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시중 자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채와 달러화를 외면하고 있다. 특히 달러화는 기축통화의 지위에 대해 공격을 받을 만큼 안전자산의 위상이 훼손된 상황이다.
반면 변동성이 높은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연초 이후 강한 반등을 보였고, 국제 유가도 수요 부진과 무관하게 강세다. 전통적인 안전자산 가운데 강세를 보이는 것은 금이 유일하다.
시장 전문가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찾는다. 각국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풀어놓은 데 따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졌고, 이 때문에 경제 펀더멘털보다 물가 상승을 헤지할 수 있는 자산이 이른바 안전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함께 주요국의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물량 압박도 가격 하락에 일조하고 있다. 이밖에 선진국의 국채가 투자자들 사이에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린 데 이어 독일과 미국 등 주요국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RBC 캐피털마켓의 존 레이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며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AAA 신용등급을 상실했고, 영국 역시 정부가 경제 현안들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강등될 위기"라고 말했다. 경제 부국의 국채가 결코 안전자산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전통적 위험자산 '사자' = 지난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44.60달러로 거래를 마친 국제 유가는 최근 60달러를 돌파, 탄탄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 40달러 아래로 내리꽂히며 경기 한파를 고스란히 반영했던 유가는 최근 무서운 기세로 오르는 모습이다.
주가도 마찬가지. 국채 시장에 비해 글로벌 증시가 상대적으로 강한 오름세를 보인 가운데 이머징마켓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특히 러시아 증시는 지난해 10월 저점 이후 100% 이상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위험자산의 강세를 두고 경기 바닥론과 회복 기대감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지만 시장 전문가는 펀더멘털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다만, 인플레이션 위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전문가는 주가 상승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배경을 제시한다.
미국 예일대 기금 운용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스웬슨 양적 완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을 언급하며 "모든 투자자가 물가연동채권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 역시 인플레이션 헤지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라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금을 선호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해 말 온스 당 863.80달러에서 상승세를 지속, 최근 950달러를 넘어섰다. 시장 전문가는 인플레이션 헤지 심리가 강화되면서 금 선물 가격이 온스 당 1000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스위스의 대체자산 투자 전문업체인 파트너스 그룹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헤닝 에커만은 선진국의 두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부동산과 상품 투자비중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페이든 & 라이겔의 매니저인 로빈 크레스웰은 "기억력이 뛰어난 투자자라면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아직도 피부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국민들 대다수는 원하지 않았는데"…기름값으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