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끝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은 벌써부터 경기회복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11일자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실적악화에 따른 감원과 임금 삭감 등으로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사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성역 없는 성과제를 적극 도입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당근 없는 채찍질로 불황탈출을 이끌어낸 과거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악몽이 사실상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통적 기업문화에 서구식 성과제가 과연 먹혀들까.
닛케이비즈니스가 성과제를 도입한 기업에 근무하는 94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3.3%는 "성과제에 근거한 자신의 평가에 대해 불만"이라고 응답한 반면 만족한다는 답변은 16.2%에 불과했다. 또한 "성과제 도입 후 업무의욕이 향상됐나"라는 질문에 대해선 "향상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36.3%로 나와 "향상됐다"(16.1%)의 2배를 웃돌았다. 응답자의 68.5%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성과제 도입이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닛케이비즈니스는 이 설문조사 결과만 놓고 성과제가 동양식 사고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강조한다.
1993년 후지쯔는 '금기'를 깨고 일본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성과제를 도입, 인사평가와 보수체계까지 모조리 미국식으로 바꿔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그럼에도 이후 성과제를 따르는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현재는 일본 상장기업 가운데 80%가 성과제를 고수하고 있다.
왜일까. 닛케이비즈니스는 성과제란 열심히 일한 사원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사원들의 사기를 높여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회사의 실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성과제 도입의 성공적 사례로 혼다자동차를 꼽았다.
1990년대 초반, 혼다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불황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1989년도에 905억엔에 달했던 경상이익이 1993년에는 227억엔으로 절정기의 4분의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다 창업주의 경영방식에 메스를 댄 인물이 가와모토 노부히코(川本信彦) 당시 사장이다.
가와모토는 관리직에 연봉제를 도입하는 한편 혼다 전통의 의사결정방식인 '와이가야'를 없애고, 성역이었던 연구개발부분에도 손을 대는 등 '혼다이즘'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개혁해 나아갔다. 그 결과, 혼다는 그 때까지 엄두도 내지 못했던 4륜구동 차량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개발하는데 성공해 미니밴'오딧세이'와 'CR-V'가 탄생하면서 부진의 늪에서 탈출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차 '시빅'으로 세계 친환경차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이외에 제약업계에선 1994년 다케다약품공업과 2004년 고바야시제약이 성과제 도입에 성공했으며 화학업체인 가오도 이를 통해 기업 개혁을 일궈냈다.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의 하나다 미쓰요(花田光世) 교수는 "이들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과제를 제대로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인건비만 줄이기 위해 덩달아 도입한 기업들은 모두 쓴맛을 봤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다 교수는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성과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이 사원의 목표로 이어질 수 있는 균형잡힌 운용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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