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이후 편의상 직위, 존칭생략)의 어색한 문제는 현재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실은 과거에 만들어진 갈등입니다. 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있었던 과열경쟁의 후유증이라고 넘겨 버리기엔 너무 스토리가 지루한 영화입니다.
어느 편의 책임인가를 따지는 것은 이 시점에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로, 결론은 승자가 패자를 진정으로 정치적 동지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문제 하나뿐입니다.
하물며 국가경영에 최대지분을 가진 여당이 연거푸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느니만큼, 주총에 해당되는 전당대회를 유일한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당대회는 과거 한국정치사의 경험상으로도 1대주주와 2대주주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당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길항관계는 항시 있어왔던 일이고, 어느 고비에 이르면 당권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가리는 모험은 책임정치를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더구나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두 차례나 참패한 패전의 책임을 지도부에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스스로 당직을 달라고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당대표와 만나자고 요구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국은 원하지 않은 것을 주는 척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눈에 주류 측이 뭔가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술책이지요.
정치라는 건 꼭 만나야 일이 풀리는 게 아닙니다. 달랑 성명서 한 장으로도 능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정치의 묘미입니다. “어제 밤 나는 눈 내리는 오타와 거리를 거닐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도 캐나다를 이끌 사람이 있다는 걸...” 어느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이런 짧은 성명을 읽고 수상 직에서 미련 없이 은퇴했던 피에르 트뤼도가 생각납니다.
당 대표가 누군가를 믿고 현상을 유지하려니 일이 더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을 같이 하는 한 현실적인 지분을 인정해주고 승자 독식의 유혹을 버려야 하는 게 순리입니다. 정 그렇게 못 한다면 확실하게 갈라서서 진짜 책임정치를 하는 독선적인 소수당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어언간 3년여밖에 안 남은 한나라당의 대권후보경쟁구도. 그때까지 어떤 식으로든지 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갈 것인가에만 골몰하다가 소중한 다른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1년 남짓 남은 단체장 선거도 공천문제가 또 다른 화약고가 되어서 휴화산 한나라당은 다시 한번 대폭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된 여론조사를 용인하고, 지도부가 당원들로부터 당헌과 당규를 지키라는 요구를 받는 한 한나라당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절대권력과 잠재권력, 1대주주와 2대주주의 신뢰문제를 정립하지 않으면 어떤 형식의 미팅도 사상누각을 쌓는데 불과하겠죠. 이대로 가면 두 사람 다 망할 확률보다는 한 사람만 확실하게 망할 확률이 점점 높아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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