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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무대 밖에서 만든 ‘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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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e Blossom(오렌지 블라섬)은 감귤 나무류과의 오렌지 나무에서 피는 흰 꽃입니다. 미국의 플로리다주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지요. 미국에선 한때 이 꽃의 이름을 따서 ‘Orange Blossom Special’호라는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얼핏 보면 호수이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꽤나 인기가 좋은 열차였다고 합니다. 열차의 이름도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좋고 빠른 열차로 소문나 있는데다 운행구간 역시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이 열차는 1930년대 모든 사람들이 한번 타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마이애미에서 뉴욕을 연결한 해안철도(Seaboard Line)를 운행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열차가 달리는 분위기를 멜로디로 살려내면 어떨까요? 때론 추억속으로, 때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으로, 때론 아름다운 풍경과 분위기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소재로 만든 트레인 송(Train Song)이 있습니다. 'Orange Blossom Special'이라는 곡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 Ervin T. Rouse가 1938년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나오던 길에 마이애미 씨보드 레일로드 역에 머물러 있던 Orange Blossom Special호를 보고 만든 작품입니다. 독특한 기차의 리듬을 멜로디로 살려내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서울대학교의 CEO과정(ACPMP)이 주최하는 관악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름도, 성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 아가씨가 전자바이올린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녀의 열정적인 연주에 모든 참석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을 바쳐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선율에서 빈공간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꼈고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도화지에 무언가 새로운 색깔들이 채워져 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저에겐 그녀의 연주가 가슴을 설레게 했고 ‘세상의 때’로 메워진 마음을 순화시키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때 그녀가 열정적으로 연주했던 곡이 바로 ‘Orange Blossom Special’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TV를 시청하던 중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수요기획 다큐멘터리-‘엘살바도르의 연인, 도진미’였습니다.
몇 년 만에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가슴 아픈 과거가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일까요?

그녀는 7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음대를 수석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유학을 갔다 오면 엘리트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성공인의 반열에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출국 몇 일전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좌절을 경험합니다.

가까운 지인의 권유로 전자음악을 시작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녀는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클래식에서 전자음악으로 전향하면서 음악적인 갈등을 겪고 스트레스로 원형탈모 증상과 우울증 증상까지 겪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넘게 쥐고 살았던 바이올린을 포기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을 정리하고자 찾아간 곳이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였습니다. 음악을 포기하고 마음을 정리하려고 찾아간 그곳에서 그녀는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춤과 음악의 열정이 가득한 엘살바도르에서 음악을 잊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악보도 없이 자유롭게 연주하는 엘살바도르의 음악인을 보면서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의 자유로움에 매료되고 맙니다.

엘살바도르 최고의 기타리스트 에스코바르씨에게 남미 음악과 유유자적한 삶을 배우고, 자신의 콘서트에서 현지 음악가들과 협연을 하며 남미의 음악 속으로 들어갔고, 결국 그녀는 문화적인 벽을 넘어 엘살바도르인들의 귀와 가슴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에게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했던 것은 작은 모임에서 우연히 연주했던 자신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조명도 정교한 음향시설도 없지만 자신의 음악을 듣고 행복해하는 이들이 있어, 음악가로서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즉흥적인 거리공연과 작은 장애인 시설및 양로원, 빈민가 등등 수많은 소규모의 자선 공연을 통해서 무대도 없이 홀로 바이올린 몇 곡을 연주하는 초라한 공연이었지만 그녀는 자선공연 하나 하나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전 그때 그녀가 ‘Orange Blossom Special’을 미친 듯이 혼을 바쳐 연주했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태운 오렌지 꽃 특급열차를 세워 다시 승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악을 잊기 위해 찾아간 엘살바도르.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음악을 찾았습니다. 거리 연주에서 자신의 음악에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은 무대 밖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녀는 직접 관객들을 찾아가는 소규모 자선공연이나 거리 공연을 하면서 관심을 모았고 대사관 초청으로 대형콘서트를 열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전형적인 엘리트 음악인의 길을 걷다가 거리의 음악가가 되기까지 그녀의 음악 여정은 남달랐던 셈입니다.

좌절을 딛고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진정한 자신의 음악을 찾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산은 멀리서 보면 멋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정상까지 도전해보자는 도전의식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그렇지 않습니다. 숲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정상에 이르기까지에는 몇 겹의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도진미씨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포기하는 것은 실패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젠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무조건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합니다. 한때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과 좌절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지만 이젠 그것이 자신을 또다른 세계로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됐고 용기의 뿌리가 됐다는 것입니다.

경제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과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실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공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달리던 사람들은 그 좌절감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깊어가는 봄, 오늘 아침에는 이 멜로디를 다시 들어보면 어떨까요? 트레인 송(자니 캐시)의 내용까지 음미하면서 불황의 시름을 털어버리고 스스로 가슴속에 ‘희망충전소’를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기 봄 봐,
열차가 다가오고 있잖아.
이봐 멋있는 기차가
정거장으로 들어온단 말이야.
내 인생을 태운 오렌지꽃 특급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니까.

나는야 플로리다로 가고 있다네.
백사장을 거닐 작정이야.
어쩌면 모래밭이 더 좋은
캘리포니아로 갈지도 모르겠는걸.
울적했던 뉴욕생활을 버리고
나는야 오렌지꽃 열차를 탈테야.

“여보시오, 플로리다에 언제나 돌아오렵니까?”
“플로리다에 언제 돌아가겠느냐구요.”
“글쎄 아직 계획을 모르겠는 걸”
“뉴욕에 가면 잘먹고 지낼수 있을까?”
“글쎄, 그런 걱정을 할 바 아니잖아....
부닥쳐 봐야지 뭐...”

여보게,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역시 기차일걸세.
그 열차는 가장 빠른 기차이던데
해안선을 달리는
오렌지 블라섬 스페셜호는 역시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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