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178점으로 본 한국 추상의 밀도
원색과 기하학으로 세운 내면의 질서
검은 천장 아래, 붉은 산은 조용히 날을 세우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 전시장. 18일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이어진 전시 투어에서 사람들의 걸음은 이상하게 느려졌다. 작품 설명을 듣기 전부터 화면은 이미 충분히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삼각형 하나가 봉우리가 되고, 비스듬히 잘린 면 하나가 능선이 되며, 붉은색과 푸른색은 풍경의 색이 아니라 오래 압축된 시간의 색으로 버텼다.
유영국의 산에는 길이 없다. 등산로도, 나무도, 사람도 없다. 산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눈앞의 자연은 지워져 있다. 대신 화면에는 선과 면, 색과 경계, 균형과 충돌이 남았다. 그것이 이 전시를 보는 첫 번째 열쇠다. 유영국은 산을 그린 화가라기보다, 산을 빌려 회화가 어디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실험한 화가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일부터 유영국 탄생 110주년 기념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새롭게 시작한 '한국 근대 거장전'의 첫 전시다. 유화 115점, 드로잉 12점, 릴리프 4점, 사진 8점, 아카이브 등을 포함해 세부 집계 기준 총 178점이 나왔다. 미공개작 15점도 포함됐다.
전시는 친절한 연대기를 택하지 않았다. 출발점은 1916년 울진도, 1935년 도쿄도 아니다. 1964년이다. 유영국이 49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해다.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 한국 추상미술의 전위적 그룹 활동 한가운데 있던 작가가 단체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자기 작업의 시간으로 방향을 튼 순간이다.
이 선택 때문에 전시는 한 번 접힌다. 1964년의 개인전에서 시작해 1930년대 도쿄 문화학원 시절의 아방가르드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1960~70년대의 기하학적 추상과 만년의 심상 추상으로 이어진다. 한 생애를 차례로 정리하는 방식이 아니다. 한 사람이 왜 끝내 자기 안의 산으로 들어갔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초기 섹션의 공기는 낮고 어둡다. 벽면에는 작은 드로잉과 사진, 릴리프가 놓이고, 전시장 가운데에는 자료들이 정돈돼 있다. 여기서 유영국은 아직 '산의 화가'가 아니다. 그는 형태를 시험하는 사람이다. 회화와 부조, 사진을 오가며 사물의 겉모습보다 구조를 붙든다. 산은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가 오래 밀고 간 조형 실험이 결국 도달한 가장 적확한 이름이었다.
밝은 전시장으로 넘어가면 회화의 온도가 달라진다. 붉은 면은 화면을 데우고, 푸른 면은 그 열을 눌러 잡는다. 노랑과 초록은 서로를 밀어내면서 화면 한가운데 긴장을 만든다. 유영국의 색은 장식적이지 않다. 예쁘게 번지지 않고,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색은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다시 산의 몸이 된다. 원색은 뜨겁지만 화면은 엄격하다. 기하학은 차갑지만 이상하게 생명력이 있다. 이 모순이 유영국 회화의 힘이다.
그의 산은 고향 울진의 산과 바다에서 왔다. 그러나 울진의 풍경을 닮게 옮긴 결과는 아니다. 봉우리는 삼각형으로, 바다는 수평면으로, 노을과 빛은 색채의 압력으로 바뀌었다. 자연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형식으로 압축됐다. 닮게 그리지 않을수록 더 깊이 닿는 회화. 유영국의 추상은 그 역설 위에 서 있다.
기자간담회장에서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전시 제목의 '산'을 눈에 보이는 산이 아니라 마음에 투영된 산으로 풀었다. 이 설명은 전시 후반부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1977년 심장 박동기 부착 수술 이후 유영국은 여러 차례 큰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했다. 그러나 말년의 화면은 병고의 흔적으로 기울지 않는다. 오히려 색은 낮아지고, 산은 부드러워지며, 화면의 숨은 깊어진다.
후기 섹션에 놓인 작업실의 이젤과 의자는 작지만 강한 장면이다. 거장의 신화보다 생활이 먼저 다가온다. 유영국에게 회화는 특별한 영감의 폭발보다 매일 같은 시간 캔버스 앞에 앉는 일이었다.
그는 59세에 이르러서야 작품이 처음 팔린 작가였고, 수술 뒤에도 작업실의 리듬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였다. 이 사실은 그의 회화를 더 비극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건조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산은 감동의 소재가 아니라 반복된 노동의 결과였다.
전시 마지막에 이르면 산은 더 이상 자연도, 기하학도, 기억도 아니다. 1994년 작 '산-Red'와 '산-Blue'는 서로 다른 색의 장벽처럼 마주 선다. 붉은 산과 푸른 산은 풍경의 두 표정이 아니라 한 작가가 평생 붙든 세계의 두 극점이다. 불과 물, 긴장과 침묵, 밀도와 여백이 한 화면 안에서 부딪친다. 여기서 산은 밖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안에서 세운 질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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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회고전이지만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방송인 피터 빈트가 참여한 오디오가이드, 9월 DDP 외벽에 유영국의 색채를 펼치는 서울라이트 협업도 마련됐다. 그러나 이 전시의 중심은 끝내 회화다. 기술이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고 지우는 시대에, 유영국의 화면은 한 사람이 같은 형식을 오래 밀고 갔을 때 생기는 깊이를 보여준다.
산은 밖에 있지 않았다. 유영국은 그것을 화면 안으로 가져왔고, 다시 자기 안의 질서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관객이 만나는 것은 산의 풍경이 아니다. 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한 작가의 생활, 형식, 고집이다. 그 산에는 길이 없다. 대신 오래 바라봐야 열리는 면들이 있다. 전시는 10월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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