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지옥에서 살아남은 소녀 무용수의 회고
아우슈비츠서 생존해 세계적 심리학자로
'에디트 에바 에거'가 90세에 쓴 회고록
"우리가 탄 기차 차량은 내가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종류다. 이것은 여객 차량이 아니다. 가축이나 화물을 수송하기 위한 차량이다. 우리는 인간화물이다. 한 개의 차량에 100여명이 타고 있다. 한 시간이 일주일처럼 느껴진다. 8명의 사람에게 빵 한 덩어리가 주어진다. 그리고 물이 담긴 양동이 하나. 배설물을 위한 양동이 하나. 땀 냄새와 배설물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사람들은 이송 도중 죽는다. 우리는 모두 똑바로 선 채로 잠을 잔다. 가족들에게 기댄 채로, 죽은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1927년 슬로바키아 코시체에서 태어난 헝가리계 유대인 소녀가 아흔의 나이가 돼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던 당시를 회상하며 쓴 글이다. 코시체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제국 당시에는 '커셔'로 불린 헝가리 문화권 도시였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소녀의 이름은 에디트 에바 에거. 에거는 지난달 27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9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아유슈비츠의 무용수'는 에거가 2017년에 출간한 회고록이다. 원제는 '선택: 가능성을 받아들여라(The Choice: Embrace the Possible)'다. 한국에서 아우슈비츠의 무용수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유는 에바가 발레 덕분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요제프 맹겔레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유전학 실험을 한 독일군 장교였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악명높았다.
에거는 책에서 맹겔레를 정교한 살인자이자 예술 애호가로 묘사한다. 맹겔레는 저녁마다 막사를 샅샅이 훑으며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감자들을 찾곤 했다. 어느 날 에거 역시 막사에 들이닥친 맹겔레 앞으로 끌려나갔다.
"작은 무용수, 나를 위해 춤을 춰봐."
에게는 막사 입구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선율에 맞춰 춤을 췄다. 춤을 추며 에거는 생각했다. '맹겔레는 여기 있는 수백 명의 여자 중 다음에는 누구를 죽일지 부하와 의논한다. 만약 한 스텝이라도 실수한다면, 만약 그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할 만한 어떤 일을 한다면, 죽는 사람은 내가 될 수 있다. 나는 지옥에서 춤을 추고 있다.'
다행히 에거의 춤이 끝난 후 맹겔레는 그에게 빵 한 덩어리를 던져줬다. 에거의 어머니는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에거는 살아남았다. 에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6년 결혼했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살다가 공산 정권을 피해 194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쉰 살이 넘어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인간의 상처와 회복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심리학자가 됐다.
이 책은 2017년 미국에서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에거는 짧고 절제된 문장으로 어린 시절 경험한 지옥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동시에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이야기한다. 예컨대 그는 맹겔레 앞에서 춤을 추며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빼앗을 수 없단다"라는 어머니의 말을 끊임없이 되뇐다.
에거는 나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나쁜 일을 겪었다고 해서 곧바로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둘 때 비로소 나쁜 일에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마음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이야기다. 에거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았듯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와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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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무용수 |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음 | 안진희 옮김 | 북모먼트 | 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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