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심판 결론 앞둔 憲裁도
'진영' 넘어 '헌법'으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결정문' 보여주기를
역대 미 연방대법관 인기 순위를 매긴다면 몇해 전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앞줄에 놓아도 좋을 것이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는 팝스타 같았다. 여든 넘은 대법관 얼굴 사진과 이니셜(RBG)을 새긴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미국인들이 긴즈버그를 사랑한 것은 그녀가 '여성의 군사학교 입교'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판결로 소수와 약자 편에 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6년 먼저 세상을 뜬 스칼리아 대법관 추도사를 통해 긴즈버그가 그 이유를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법조문 해석이었고, 같은 것은 헌법 숭상이었다. 스칼리아의 반대 의견을 수렴해 발표한 내 판결문은 초안보다 훨씬 나았다." 스칼리아는 대법원 보수파의 거두였다. 긴즈버그가 언론인터뷰에서 "때론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고 할 만큼 둘은 재판에선 날카롭게 대립했지만 개인적으론 40년 지기(知己)였다. 긴즈버그는 스칼리아와 의견이 다를지언정 끝까지 존중하며 함께 목표를 찾아가는 타협과 관용을 실천했다.
그래서 두 대법관을 모티브로 제작된 오페라의 메인 곡 제목은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였다. 스칼리아도 '숙적' 긴즈버그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언론에 밝혔다. "나는 상대의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저렇게 좋은 사람(긴즈버그)도 가끔 나쁜 생각을 하니 문제예요."
앞서 수없이 인용됐을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사법부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사법의 정치화'를 걱정한다. 대법원 재판을 받는 이들이 주심 대법관 성향을 먼저 따지고, 헌법재판 당사자는 재판관 중 보수와 진보가 몇 대 몇인지 헤아리기 바쁘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에도 타협과 관용의 전통, 토론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가 숨 쉬고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헌법재판소 3층, 마흔 평 채 안되는 재판관 평의실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다. 토론 수업으로 유명한 미국 사립고교의 후원자 이름을 딴 하크니스(Harkness)테이블인데, 대법원 15층 대법관 전원합의실에도 있다. 네모도, 타원형도 아닌 원탁이 놓인 이유는 아무런 제약 없이 논쟁하며 토론하라는 뜻이다. 평의든, 전원합의든 후임부터 의견을 내는 것도 '계급' '경력' '나이'가 논의를 방해하는 걸 막자고 고안된 장치다.
어느 헌법재판관은 평의실 풍경을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고 했는데, 감정이 논리를 가리는 걸 막기 위해 재판관들끼리 아호(雅號)로 호칭한다고 했다. '모 재판관이 평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평의에 육두문자가 난무하여'… . 루머는 피어났지만 갈등이 헌재 문지방을 넘는 일은 없었다. 헌재 담벼락 옆 어느 복국집은 재판관들의 단골 뒤풀이 장소였다. 재판관들은 "목 축이며 서운함도 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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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이 끝나면, 오롯이 '헌재의 시간'이 도래한다. 긴즈버그는 2015년 방한 당시 "선출된 권력이 아닌 대법관이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것이 연방대법원의 전통이고, 국민 신뢰를 받으며 나라를 유지해 왔다"고 했다. 우리 헌법재판관들도 진영 갈등을 뛰어넘어 모두가 '헌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아름다운 결정문을 만들어 달라. 긴즈버그와 스칼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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