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증액은 극우정당만 좋은 일"
일각에선 "EU 부채 감당 여력 있어"
방위비 '면책조항' 추진…'재무장은행'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 안보에 선을 그으며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 국가들만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방위비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양대 산맥인 독일과 프랑스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어 당장 방위비 지출을 올릴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유럽 국가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을 정치적 결단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간)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 등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비공식 회동을 했다.
유럽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또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있어서 유럽의 역할 확대와 국방비 지출 증가, 일명 유럽 자강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앞서 지난 13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기자회견에서 유럽이 유럽의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샘 아저씨(Uncle Sam·미국)를 호구 아저씨(Uncle Sucker)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인 나토 방위비 목표치를 5%까지 증액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유럽 동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3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없이 유럽 홀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면 방위비 부담이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막연하게 4년 뒤 미국의 정권 교체만 기다릴 수도 없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희생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정치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나토 방위비 목표치) 2%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방위비 지출 확대가 유럽 개별 국가의 신용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용평가기관 S&P 글로벌은 국방비를 GDP의 5%로 늘리면 연간 8750억달러(약 1264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하며 "다른 지출 감소로 상쇄하거나 신용도에 부담을 주지 않고는 개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훨씬 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국방 예산을 늘리기 위해 복지 예산 삭감이 거론되나 정치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14일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복지 예산을 줄여 국방 예산을 늘리면) 우리 사회가 분열될 것이고,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극우 정당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적자 수준으로 볼 때 유럽 재정이 방위비 확대를 감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연합(EU)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GDP의 약 120%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지고 있으며 연간 재정 적자는 6% 수준이지만, EU 전체 평균 부채는 GDP의 약 81.5%, 연간 재정 적자는 2.9% 수준이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009년 이후 미국이 적자를 이용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들보다 5배 더 많은 자금을 경제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유럽 경제 싱크탱크인 브뤼겔 연구소의 졸트 다르바스 수석연구원은 "많은 EU 국가들은 더 높은 공공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며 "문제는 정치적 의지"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방위비 증액을 위해 EU 재정 준칙 적자 상한선 규정에서 방위비를 제외하는 ‘면책 조항’ 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EU 상임의장국인 폴란드는 영국, 노르웨이 등 비EU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재무장 은행’을 설립해 자본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외신들은 오는 23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이 이 정치적 의지의 시험대라고 본다. 차기 독일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뮌헨안보회의에서 "지금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EU 전체가 너무 늦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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