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영향 덜받는 의약품
중국 가격 경쟁력도 힘잃어
단위무게당 부가가치도 높아
국내 바이오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들이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거침없는 캐파(생산능력) 증설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격적인 증설이 '공급 과잉'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K-바이오 기업들은 생산 효율화·품질 경쟁력 강화 등으로 글로벌 CDMO 업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겠다는 기조다.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여타 산업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경기를 덜 타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이점을 최대한 살려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는 인천 송도에 2032년까지 8공장까지 건설해 2032년 132만4000ℓ의 압도적 생산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36만ℓ 규모의 송도 바이오캠퍼스 공장을 짓고 있다. 1공장은 2027년 1월 본격 가동된다. 셀트리온 도 CDMO 신사업 참여를 선언하고 국내에 최대 30만ℓ 규모의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로슈·베링거잉겔하임·존슨앤드존슨 등이 캐파 증설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4~5년 이후에는 글로벌 CDMO 순위까지 바뀔 전망이다. CDMO 기업들의 공격적인 증설은 글로벌 의약품 산업의 구조가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선 의약품은 필수 소비재 성격이 커서 경기변동에도 수요가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다른 소비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지 않을 수 있지만 항암 치료제나 골다공증 치료제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서 사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불황·경제 블록화 등으로 인해 국내 대부분의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수출에 의존해 글로벌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 산업계에서 바이오 산업이 '헤지(hedge·위험 분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도 다른 산업과는 양상이 다르다. 가격 경쟁력이 다른 산업만큼 중요하지 않은 탓이다. 중국의 글로벌 산업 전략은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전(全) 밸류체인을 잠식한 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경쟁 기업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배터리 산업이 대표적인 분야다. 리튬·니켈 등 광산 채굴 단계부터 전기차 완제품까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을 모두 중국의 것으로 만들고 글로벌 소비자에게 '값싸고 좋은 품질'을 어필하고 있다. 바이오 CDMO 분야에서는 이 같은 가격경쟁력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CDMO는 가격 경쟁력보다는 품질 경쟁력이 결국 생명·건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미국 식약처(FDA) 등 관계기관의 까다로운 생산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고 전략 산업이기 때문에 고객사들이 지정학적 위험을 안고 중국 기업을 선택할 유인이 적다"고 말했다.
바이오 CDMO는 최근 글로벌 공급과잉 영향을 받고 있는 배터리 산업과도 비교된다. 두 산업은 최근 5~10년 새 우리 산업계에서 가장 급격한 캐파 증설을 하고 있다. 다만 생산능력 확대 속에서 성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 '캐즘(성장 산업의 일시적 정체)'과 중국의 물량 공세로 인해 공급과잉에 직면한 반면 바이오 CDMO는 급격한 캐파 증설에도 높은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고 외려 신규 진입 기업들마저 늘어나고 있다.
단위 무게당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도 CDMO 산업의 장점이다.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차지하는 원가 비중도 높지만 무게 비중도 높다. 전기차 한 대당 250~900㎏가량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반면 바이오의약품은 항공 운송이 가능할 정도로 무게가 적게 나가고 단위 무게당 부가가치도 높다. 업계에 따르면 바이오리액터(세포반응기) 1만ℓ당 매출 500억원 안팎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료 의약품 500억원 규모라 할지라도 무게는 10t가량 불과한 것이다. 배터리 기업들이 북미·유럽 등에 연산 수백 GWh의 현지 거점 공장을 지어야 하는 반면 CDMO 기업들이 국내 생산에 주력하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국내보다도 2배가량 건설 비용이 많이 들고 인력 수급 문제도 뒤따른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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