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시상식서 4분간 수상소감
"언어는 우리를 연결" 다시한번 강조
스웨덴 국왕이 직접 증서·메달 수여
소설가 엘렌 맛손 문학상 시상 연설
"한강의 인물들 연약하지만 힘 있어"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톡홀름 신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이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연회 말미 연회장 가운데로 이동해 약 4분 동안 소감을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강조한 우리 모두가 언어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 AFP연합뉴스]
한강은 어린 시절 비를 피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를 글 쓰는 일에 비유했다. "여덟 살 때 오후 산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다른 아이들과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일을 기억한다. 길 건너편에는 비슷한 건물의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여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다,"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다." 한강 수상소감
연회는 오후 7시에 시작됐고 이에 앞서 한강은 오후 4시부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한강은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노벨상 시상식의 상징인 ‘블루 카펫’ 위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시상식의 복장 규정은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드레스가 원칙이다. 그리고 자국 전통 의상이 허용된다.
시상식은 카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을 비롯한 스웨덴 왕실 관계자들이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구스타프 16세 국왕 등은 콘서트홀 오른편에 자리했다. 이어 요하네스 구스타프손이 지휘하는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흐르면서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5개 부문(평화상 제외) 수상자 11명이 입장해 왼편에 자리했다. 수상자들이 입장할 때 구스타프 16세 국왕 등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한강은 수상자 11명 중 왼쪽에서 여덟 번째 자리에 앉았다. 자리는 시상 순서에 따라 배치됐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순이었다. 부문별 시상이 있기 전에 스웨덴 한림원의 18명 종신위원 중 한 명이 단상에서 약 6~7분 정도씩 시상 연설을 했다. 각 부문 수상자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시상식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AF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한강은 시상식이 시작된 지 약 50분이 지난 다음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전달받았다. 문학상 시상 연설은 한림원 종신위원 중 한 명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이 했다.
맛손은 꼬집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에 대한 평으로 연설을 채웠다. 맛손은 한강의 작품에서는 흰색과 빨간색, 두 가지 색이 만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흰색은 화자와 세상 사이의 보호막이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며, 빨간색은 생명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로 고통, 피, 칼에 베인 깊은 상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의 목소리는 눈에 띌 정도로 부드러울 수 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눈에 띌 정도로 부드러울 수 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이야기한다." 엘렌 맛손 시상 소감
맛손은 또 살해당한 소년의 영혼이 ‘누가 나를 죽였을까’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이는 ‘소년이 온다’에서 살해당한 중학생 동호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맛손은 망각이 목적은 아니며 잊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한강의 소설 속 인물은 상처 입고 다치기 쉽고 연약하지만 한편으로 딱 필요한 만큼의 힘도 가지고 있다"며 "그래서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질문을 하거나,기록을 요구하거나, 다른 살아 있는 목격자와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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