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계약해지' 관련 소송서 '천재지변' 사유 쟁점
法, 과거 탄핵 땐 인정 안 해…코로나19 등은 인정 추세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국정 혼란으로 자본시장 내 '유동성 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형태의 거래 계약이 무산될 경우 어디까지를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하고 책임을 경감할 수 있을지 시장 참여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1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혼란 자체는 계약 파기 참작 사유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통상 거래 계약은 손해배상 책임 등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불가항력 조항을 두는데, '대통령 탄핵'을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유로 판단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통상 상법 등에선 전쟁과 내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상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면해주도록 한다. 다만 계약은 그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 본래 전제이기 때문에 법원은 불가항력의 범위를 좁게 판단해 왔다.
이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진행된 M&A 관련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된다. 앞서 2016년 지방 선박업체인 H사는 경영 위기로 회생절차를 밟게 됐고, 회생법원은 M&A를 통해 H사에 대한 회생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A 컨소시엄이 M&A 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았다. 양측은 그해 10월11일 'M&A를 위한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총 인수대금은 30억원, 계약금은 3억으로 정했다.
H사 측은 계약 당일 컨소시엄이 입금한 계약금에 대해 질권을 설정해 주고, 인수대금이 최종 납입되기를 기다렸다. 질권이란 담보로 빌려준 돈을 계좌에서 임의로 빼낼 수 없도록 계좌에 안전장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컨소시엄은 인수대금을 납입을 미뤘고, 결국 그해 12월21일 '계약해제'를 선언했다.
컨소시엄은 인수대금 미납의 책임을 '대통령 탄핵' 등 정국 혼란으로 돌리며, 계약금 반환을 요구했다. 컨소시엄 측은 "천재지변에 준하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발주가 지연됨에 따라, 자금 수급이 곤란해졌다. 컨소시엄의 과실 없이 납입이 곤란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컨소시엄의 귀책 사유 없이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즉시 계약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투자계약서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M&A 계약이 체결되고 약 2주 뒤 언론보도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태블릿PC 논란이 본격화됐으며, 같은 해 12월9일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는데, 이 기간 사이 원·달러 환율은 1131.5원에서 1175.9원으로 급등하는 등 시장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반면 H사 측은 "계약 해지에 대한 책임은 컨소시엄이 져야 한다"며 "컨소시엄이 입금한 계약금은 몰취약정에 따라 H사 측이 가져가고, 이는 위약벌에 해당한다. 이에 따른 질권도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것"이라며 예금채권 질권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H사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계약금 몰취 조항이 컨소시엄에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다. 통상의 계약에서 계약금액의 10% 상당을 손해배상액 예정액으로 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이 사건에서 계약금 몰취 조항은 컨소시엄의 귀책 사유로 해제될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컨소시엄 측이 주장하는 '대통령 탄핵'을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투자계약 당시 컨소시엄이 H사 측과 비교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계약금 몰취 조항에 따라 컨소시엄이 입금한 계약금은 H사 측에 귀속되고, 계약 내용에 따라 이 사건 질권 역시 소멸한다"고 밝혔다. 컨소시엄 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편 M&A 관련 민사소송에선 어디까지를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으로 볼 것인지가 계속해서 쟁점화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19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면서 거래금액의 10%인 2500억원가량의 이행보증금을 냈는데, M&A 계약이 해지되며 보증금 반환 소송이 진행 중이다.
1·2심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및 영업상태가 크게 악화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천재지변 때문이었다. 이는 (계약을 해지할)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의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아시아나항공 측이 보증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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