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일단 처리 시한 10일까지 늦춰
여야 입장 극과 극 상황
예산안 대화채널부터 구축해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내년도 예산안 본회의 상정을 오는 10일로 늦춤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된 헌정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이 2일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정기국회 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 정부의 입장 차이가 흑과 백 수준으로 다른 데다 대화 채널 만들기부터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 의장은 2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의결한 예산안이 본회의에 부의되어 있다"면서 "그러나 고심 끝에 오늘 본회의에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돼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장이 법정기한 미준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예산안의 본회의 상정을 미룬 이유는 현재로서는 예산안 처리가 국민께 희망을 드리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라면서 "정기국회가 끝나는 이달 10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사안을 정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예결위에서 예비비 2조4000억원을 비롯해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와 검찰 특정업무경비 검찰 특활비, 경찰 특활비, 감사원 특경비, 감사원 특활비 등을 삭감했다. 총 삭감 규모는 4조1000억원이며 증액동의권을 가진 정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증액 예산은 0원이다. 헌법 등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삭감할 수 있지만 정부 동의가 없으면 증액할 수 없다. 야당은 여당과 함께 내년 예산안을 심의했지만 감액 및 증액에 대한 견해차로 법정기한을 넘기기 전에 국회가 할 수 있는 감액만을 담은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향후 예산안 협상과 관련해 우 의장은 "다수당은 다수당으로서,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과 도리를 다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면서 "정부가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얼마나 존중하고 충실히 뒷받침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자성과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되는 일은 피했지만, 예산안 처리는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야당의 감액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여당과 야당, 정부 모두 입장 변화가 없다. 정부와 여당은 감액예산안이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잘못된 게 없다" "특활비 등은 타협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본회의 전 우 의장과 면담에서 야당이 감액예산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최 부총리는 "예결위를 통과한 감액예산안은 정부가 보기에 정부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민생경제의 부작용을 매우 키울 수 있다"며 "야당이 예산안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게 대화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인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날치기 일방 강행 처리한 폭거에 대해 사과하고 철회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협상은 없다"고 선언했다.
반면 야당은 특활비 등과 관련해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특활비에 대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생예산을 가져올 경우 양보가 가능한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특히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 예결위원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사정기관 등의 특활비와 예비비를 제외하면 감액 예산 대부분은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여야 합의 사항인 점 등을 내세운다. 아울러 민생경제 타격 등을 우려하는 데에 대해서도 "감액 예산 규모(4조1000억원)는 정부안 총지출의 0.6%에 불과한 수준"이고 "감액 내용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용처가 지정되지 않은 예비비(2조44000억원)와 금리 인하 전망에 따른 국고채 이자상환(5000억원)이며 국민과 기업 피해와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여야 간 입장 차이가 큰 탓에 대화채널 확보부터 쉽지 않다. 일단 통상적으로 법정기한이 넘어선 이후 예산안은 여야 원내대표와 예결위 여야 간사 등이 참여하는 대화채널을 만들어 협의에 나서는데, 이미 갈등이 크게 벌어진 상황이라 당장 대화채널을 두고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우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여야 예결위 간사가 의사진행발언으로 공방전을 펼치자 "22대 국회 들어와서 여야 간의, 교섭단체 간의 교섭이 이렇게 안 된 적이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결국 예산안은 극적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이 과정에서 여야가 벼랑 끝 전술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위원은 "현 정부는 (예산 불용 등으로) 예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는데, 야당 역시 모자라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하는 것은 예산을 공수표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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