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민 기본권 대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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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죠."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카페 사장이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명이 집결한 정부 규탄 집회가 열렸다. 생계 터전인 광장을 벗어날 수 없는 상인들에게 집회 소음은 사실상 물리적 폭력이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 소음측정기로 집회 소음을 측정하니 105.7㏈(데시벨)이 감지됐다. 2시간 이상 노출 시 난청이 올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다.


집회·결사의 자유만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은 아니다. 행복추구권도 기본권이다. 집회 소음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범주에서 중요한 국민 기본권이다. 생계 터전인 광화문 광장을 벗어날 수 없는 상인들은 난청을 유발하는 수준의 집회 소음에 시달리며 행복추구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집회 소음을 둘러싼 논쟁은 국민의 기본권과 기본권이 충돌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연결된다. 정치권도 집회 소음 문제에 관해 관심은 있다. 다만 여야는 집회 소음과 관련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 쪽에서 집시법 손질에 나서자, 야당과 노동계는 기본권 침해 카드를 꺼냈다. 심야 집회 금지와 집회 소음 강화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라는 논리다. 그 주장도 경청할 부분은 있지만, 불편을 느끼는 이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회 소음 문제에 관한 촘촘한 규정을 마련하지 못한 사이 집회 문화는 변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소음 꼼수다. 소음 규제 한도를 넘나들면서 처벌을 피해 가는 방식이다.


실제로 경찰이 10분간 평균값을 측정해 집회 소음을 규제한다는 것을 알고 확성기를 껐다가 켜면서 법적인 허용 데시벨을 넘나드는 사례가 있다. 1시간에 데시벨 기준을 3회 이상 위반하면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2번 위반하면 1번은 쉬는 방식도 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집회 주최 측이 소음 규정 경계선에 맞춰 전문가 수준으로 음향을 조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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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행 집회 소음 규정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야는 집회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이라는 국민 기본권 모두를 충족하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소음을 둘러싼 허용 데시벨만 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확성기 종류에 따라 최대 소음 방출 크기를 조정하는 등 세밀하게 규정을 보완하며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회 소음에 관한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지금이 논의의 적기다.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무작정 반대할 일이 아니라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의의 포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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