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팬덤]⑩"우리는 왜 혐오하게 됐을까"
정치 팬덤, 의사 표현을 넘어 정치를 지배
노무현 서거 등 비극의 정치가 복수의 정치로
SNS의 악순환이 공론장 소멸시켜
22대 총선, 국민의힘 전당대회 등 이벤트를 거치면서 '팬덤 정치'의 위력이 재확인됐다. 일상적 정치활동이나 여론 형성 과정은 물론 공천이나 전당대회와 같은 주요 정치 일정에서 팬덤 정치는 '양념' 수준을 뛰어넘어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당내 경선 등에서 '팬덤 정치'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런 팬덤 정치가 '혐오'를 동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혐오 대상은 정치 진영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같은 진영이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도 포함된다. '적의'에 가까운 팬덤은 폭력 사태 등으로 치닫기까지 하면서 우리 정치 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팬덤 정치가 논란이 된 것은 일련의 공격성 때문이었다. 좌표를 찍고 문자 폭탄을 보내 정치인의 휴대전화를 사실상 마비시킨다거나 정치 후원금으로 18원을 보내고 영수증을 청구해 의원실을 혼란에 빠뜨리고,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과 같은 경멸하는 호칭을 사용해 비하하는 일 등등이다. 댓글을 달거나 비판적 기사를 싣는 언론사에 항의하는 등 여론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넘어 이제 팬덤은 정치무대를 주무르는 힘이 됐다. 직접민주주의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혐오'를 기반으로 한 팬덤 정치는 조정과 합의 무대로서의 정치 기능을 마비시키고, 극단적 대결을 부추기는 힘으로 작동하며 정치의 양극화, 더 나아가 정치의 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팬덤 정치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팬덤 정치의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해왔던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팬덤 정치 현상이 한국 정치만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민의힘도 싫어하지만, 정의당도 안 좋아하는 더불어민주당 팬덤은 정책이나 이념 지형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영 논리가 아닌 정서적인 이유 등이 정치적 의사 표현에 가감 없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인에 대해 결속력이 강하고 중산층 대졸자 등의 참여가 높으며 신생 정당이 아닌 거대 양대 정당과의 결속력이 강한 점 등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정당 내부의 권력투쟁에 극도로 민감하며 규범 등에 있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았다.
정치인 등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을 들어보면 한국의 정치 문화에서 현재와 같은 공격적인 형태의 팬덤 정치가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이나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임(박사모) 시절 팬덤은 누군가를 반대하기보다 지지를 강조하는 등 포지티브한 면이 많았고 방어적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팬덤은 투쟁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는 한국 정치사에서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겨줬다는 해석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했던 장훈 전 행정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과 이후의 정치가 달라졌다"며 "서거 이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미안함이 표출되더니, 다시 집권해서 복수하겠다는 말들이 나타났다. 과거에는 이런 복수 등의 표현을 주저해 왔는데 이제는 직설적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수의 경우에도 헌정사 최초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구속 수감 등의 사태를 겪으면서 분노, 트라우마 등을 알게 됐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감옥에 갇히는 일련의 정치 상황이 지지자들로서는 미안함, 분노, 복수심의 패턴을 밟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진영의 대선후보가 되고, 대선 승리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컸다. 정치권에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패배는 곧 지지하는 정치인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이 당을 지배했다. 이런 공포심은 무비판적인 절대적 지지로 이어지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와 같은 정치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1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이기고 나머지는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 정치제도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제 등이 만나면서 정치는 더욱 극단적으로 변화했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정의가 뒤바뀌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 진영을 향한 사정기관의 대대적인 수사, 감사, 조사 등이 이뤄졌다. 그 결과 팬들은 지지하는 정치인의 정치적,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더해 역대 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결단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훈 전 연구위원은 '옥쇄파동' 등으로 불거졌던 정당 공천에까지 관여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나 국민 청원과 같은 방식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전면에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친박 현상과 친문 현상이 겹치면서 정당이나 정치 질서에서 다원주의가 사라지고 ‘박심(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 ‘문심(문재인 전 대통령 의중)’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처럼 대통령의 의중을 아는 사람이 정치를 지배하게 됐고, '친박 감별사' '문핵관' '윤핵관' 등도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도 정치 팬덤을 가속화하고, 극단화하고 있다. 특히 정보를 선택적으로 부각하거나 왜곡된 정보가 부각되고, SNS 특유의 알고리즘 체계 속에서 음모론적인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에 빠지면서 정치 지지자들이 극단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 속에서 대안 언론으로 등장했던 SNS 등이 언론을 능가하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서 공론장은 사라지게 됐다. 그 결과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지적 겸손함은 사라지고, 혐오만 남게 됐다.
팬덤 정치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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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전 연구위원은 정치의 부재가 현재의 팬덤 민주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여야는 모든 것을 상대 탓으로만 돌릴 뿐 공동으로 전개하는 시민 사업 같은 것은 없다"며 "여야 모두 서로 망하기를 바란다"고 꼬집는다.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한 적법하게 주권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 할 것과 하지 말할 것을 구분하고 변화가 필요로 할 때 과감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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