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흔히 글을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용에 글쓴이의 생각이 담기는 것은 물론, 문체나 형식에서 성격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삶은 닮았다. 나를 드러내는 글일수록 읽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생기듯,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할수록 삶이 온전해진다. 수도 없이 퇴고한 글이라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는 것처럼 지난 일에 얽매이기만 하면 자신을 소진하게 된다. 자신의 호흡으로 문장을 고르며 글의 매무새를 만지는 일은 먹고살기로 환원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발단-전개-위기-절정을 찾아내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글자 수 981자.
[하루천자]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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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고흐, 달리, 칸딘스키, 모딜리아니, 뭉크, 마크 로스코, 모네, 샤갈….


나는 이 화가들을 화풍으로 기억한다. 화가마다 화풍이 다르다는 게, 확연하게 남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이 있다는 게 마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다. 스타일로 기억되는 일 자체가 근사하지 않은가. 피카소 그림 중에 내가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의 다른 그림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피카소의 그림이란 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본 적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피카소답기 때문에 가치 있다. '~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에 화풍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면 글에는 문체가 있다. '나만의 문체'를 갖는 일은 내 오랜 염원이다. 문장의 속도감이나 수사법 등에서 확연한 독자성을 보이는 경우에 그 사람은 자신만의 문체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문체에는 글쓴이의 가치관이나 성격, 취향, 개성 등이 드러나므로 결국 나다움의 반영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문체를 찾는 과정은 자신다움을 찾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중략)


"나의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간디의 말이다. 어떤 식으로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글도 삶처럼, 특정한 형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이미 메시지까지도 드러난다. 나의 문체는 내 글의 주제의식을 반영한 거울이다. 예를 들어 호방하게 살고 싶다면 그 사람은 시원시원한 문체를 쓸 것이고, 감수성 짙게 살고 싶으면 낭만적인 문체를 쓸 것이다. 결국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나의 행동거지로 일상 속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종이 위에서 문체로 드러나기도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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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할 것을 계속 추구하고, 버릴 것을 계속 버리는 일. 이것이 나만의 문체를 마련하기 위해 내가 취한 방식이다. 나의 영혼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지키고, 추구하지 않는 가치관은 지속해서 쳐낸다면 끝내는 자기다운 것만 남을 것이고, 그것이 곧 나의 철학, 본질, 개성, 정신일 것이다.


-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다산초당,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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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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